[매일춘추] 중의학 vs. 한의학 그리고 고려의학

입력 2016-02-04 00:01:00

한의사들이 과거 한의학(漢醫學)을 한의학(韓醫學)으로 용어를 바꾼 것을 두고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자(漢字)가 중국문자를 의미하듯 한의학(漢醫學)은 중국전통의학과 다를 바 없는데 억지를 부린다는 시각이다. 정말로 그럴까? 사실 이는 한자공부를 제대로 못 한 사람들이 '한'(漢)이라는 글자의 뜻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대구경북은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시조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를 지은 매운당 이조년(1269~1343)을 배출한 고장이다. 선생이 만년을 보낸 고령군에서는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문학사에 빛나는 이 서정시를 기념하여 매년 추모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여기서 은한(銀漢)은 은하수를 일컫는 말이며 한(漢)의 의미는 한(漢)나라의 한이 아니라 '많다,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전의 한의학(漢醫學)이라는 용어는 중국의학이라는 뜻이 아니라 큰 의학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었다.

사실 일제강점기 전에는 의학이라 하면 당연히 한의학을 가리켰고 의사는 한의사를 지칭했다. 고종이 설립한 왕립한의학교의 이름은 '동제의학교'였다. 1909년 '의사총합소'라는 단체가 결성되었는데 바로 지금의 한의사협회를 뜻하는 조직이었다. 최초의 근대식국립병원인 '광제원'의 의사들은 대부분 한의사였다. 그러나 일제는 한일합방 후 민족의학인 한의학의 씨를 말리고자 지금의 한의사격인 대한제국 의사들을 의생이란 이름으로 격하시켜 추가 배출을 차단하고, 대신 자신들이 강제 도입한 서양의학전공의사에게 '의사'란 호칭을 부여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전의 의사들과 구별하여 이들을 양의(洋醫)라고 불렀다. '양의사'라는 이름이 이 시기에 보편화된 것은 1931년 염상섭의 소설 '삼대'에 등장하는 '한방의는 덕기를 따라 양의들에게 자기의 진단을 개진하고 방문(처방전)을 내보였다'라는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다.

광복이 되자 일제에 탄압받던 한의학도 마침내 부활의 나래를 펴게 되어 1951년 '큰 의학'이라는 뜻을 담은 '한의'(漢醫)라는 명칭으로 전통의학 의권이 회복되었고, 1986년 중의학(中醫學)과 구별되는 우리 전통의학의 자주성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한의'(韓醫)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북한의 경우는 어떠할까? 북한 역시 해방 후 일제에 의해 폐지된 전통의학 의권을 되살려 중국 중의학과 구별하여 '동의'(東醫)라 이름 지었고, 근래에는 우리 역사에서 자주성을 회복한 고려시대를 기리는 의미로 '고려의학'이라고 개칭하여 현재 한의사를 '고려의사'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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