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론' 이상필 대표·'라피네스' 박지혜 대표
몇 해 전 대한민국에 청년창업 붐이 일었다. 모두가 청년의 도전을 권했다. 세월이 흘러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2012년 현대경제연구원 창업기업 연도별 폐업률에 따르면 2년 차 청년창업자 중 43.5%가 폐업하는 게 현실이다.
경상북도는 이 같은 실패를 줄이고, 좋은 아이템과 기술력을 가진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2010년부터 청년창업기업 육성에 나섰다. 경북도는 지난해 9월 기준 1천152명의 청년 사업가를 배출해 창업 1천15명, 고용창출 1천421명, 지식재산권 174건(특허 111, 상표권 36, 실용신안 21, 기타 6)의 성과를 거뒀다. 더욱이 지난해 경북의 청년 CEO 가운데 2년 차에 폐업한 이는 11.7%에 그쳤다. 경북도의 청년 CEO 육성사업이 남다른 성과를 낸 것이다.
매일신문은 경북도를 통해 안정적인 연착륙에 성공한 청년 CEO들을 만나 그들이 '청년창업 히어로'가 되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
◇쫄딱 망해봤다 죽기살기 연구…정화장치 벤처 '테슬론' 이상필 대표
◆편한 길보다는 거친 길로의 도전
경산에는 벤처 성공신화를 만들려는 포부 큰 청년 사업가가 있다. 이상필(33) 테슬론 대표는 8개국 20개사에 자신이 연구 개발한 압축공기용 정화장치와 기술을 수출하는 어엿한 벤처기업 사장님이다. 그런 그에게도 뼈아픈 실패의 경험이 있다. 지금 그는 과거의 실패를 밑거름으로 성공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이 대표는 "누구나 선호하는 편한 길보다는 도전정신을 가진 청년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경산이 고향인 그는 대구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미국 에머슨 일렉트릭사와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꽤 괜찮은 직장을 다녔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틀에 박힌 회사가 답답했다. 고생한 만큼, 일한 만큼 성과를 내고 싶었다. 2009년 부모님 몰래 자신이 살던 자취방 전세금을 빼고, 직장 생활하며 모은 돈과 은행 대출금으로 경기도 일산에서 직원 2명과 함께 벤처기업을 차렸다.
국내 자동차회사와 부품회사를 상대로 분주히 영업을 다녔다. 돌아오는 건 거절뿐이었다. 밤에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텨봤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8개월 만에 4억원이나 되는 돈을 날렸다. 회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직원 임금도 체납돼 고용노동부에 신고가 들어갔다. 절망적이었다.
그는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술을 마시고 한강까지 걸어가며 나쁜 생각을 하게 됐다. 한강으로 뛰어들까 말까 주저하던 중,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택시 기사는 이 대표에게 "너 같은 놈 1주일에 서너 명 본다. 춥다, 빨리 타라!"고 했다. 이날 이 대표는 택시 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 대표는 첫 사업에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집에서 그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술로 날을 보냈다. 고향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던 어느 날. 이 대표는 집 근처 놀이터에 처량히 앉아 있다가 자신의 새로운 운명과 만났다. 놀이터에 나뒹굴고 있던 매일신문 기사가 눈에 들어온 것. 기사는 2011년 경북 청년 CEO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는 4년 6개월간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2015 스위스 제네바 국제 발명대전 금상, 2015 대한민국 발명특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을 비롯해 여러 건의 특허도 취득했다. 그 과정에서 창업사업화지원사업 선정, 중소기업진흥공단 지원금 등 10억원에 가까운 각종 투자금을 끌어왔다. 현재는 체코 프라하에 코트라(KOTRA) 무역관의 도움으로 지사 설립까지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청년들이 창업해서 성공하는 비율이 2%에도 못 미칩니다. 한 번 망해봤기 때문에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성공신화가 나올 수 없어요."
그는 "다른 청년 CEO의 실패를 막아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현재 경상북도 청년CEO협회장직을 맡고 있다. 청년이 창업한 사업체가 오래 유지되고 성장하는 게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만의 강점! 사업 아이템!…지식서비스 '라피네스' 박지혜 대표
◆나의 경험이 사업 아이템
23일 오후 경북 청년CEO몰에서 만난 박지혜(30) 라피네스 대표는 '서울깍쟁이' 같은 모습이었다. 세련된 느낌의 올림머리와 짙은 아이라인, 단정한 남색 원피스. 게다가 말씨는 꼭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나운서 같았다.
박 대표는 "제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소녀였단 게 안 믿어지시죠? 저 경산 출신입니다"라고 했다.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마땅한 사업 아이템이 없다고 입을 쌜쭉거린다. 그만큼 아이템 잡기가 쉽지는 않다. 박 대표는 "사업 아이템을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박 대표가 창업한 라피네스는 지식서비스업 회사다. 바늘구멍같이 좁은 취업 관문을 통과하려는 구직자부터 학생, 회사원, 공무원,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자 등에게 보이스 트레이닝, 사투리 교정, 이미지 메이킹, 프레젠테이션, 연설, 면접 스피치 등을 교육한다. 또한 각종 기업 행사나 회의 진행을 맡아서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박 대표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굽어보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결과다.
대학 시절 박 대표는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다. 수십 번의 아나운서 지원과 탈락의 반복. 한 100번쯤 고배를 마셨을 때 그는 DBS 동아방송 아나운서가 됐다. 이후 몇 차례 이직 끝에 2013년부터 KBS 대구총국 취재 리포터로 활동했다. 리포터로 활동하던 중 그는 청년창업에 대해 취재하게 됐다. "제가 그때 뭔가에 홀렸나 봐요. '청년창업,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타이틀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취재하는 내내 '만약 내가 창업을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했죠."
박 대표는 "일을 하다 보니 대다수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걸 알게 됐다. 대개 '사투리가 심해서'라거나 '말을 잘 못한다'라는 게 이유였다"며 "여기서 해답을 얻었다. 아나운서가 되려고 했던 노력, 노하우를 나만 아는 게 아니라 스피치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제 창업 2년 차다. 크게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과거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일도 더 많이 하고 있다. 사업은 현실이고 그 현실이 녹록지 않단 걸 알게 됐다. 그 가운데서도 얻은 게 많다. 라피네스를 한 번 찾았던 단체 중 일회성으로 그친 곳이 드물다. 지난해 행사 진행만 100회 이상 했을 만큼 대부분 두세 번 박 대표를 찾는다.
박 대표는 "창업을 결심한 2014년 초부터 낮에는 직장생활, 밤에는 창업'창직 공부를 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얻은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취업이 어려우니 창업이라도 해볼까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창업한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라 창업은 새로운 시작이다. 준비가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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