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부탄에는 부탄가스가 없다

입력 2016-01-26 00:01:00

"정말이에요? 부탄이라는 나라는 첫눈이 내리는 날이 휴일이라고요?"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데,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거죠? 나도 부탄 가서 살고 싶다." 부러워하는 선생님께 "근데 부탄에는 부탄가스가 없어요. 어렵게 구한 라면 불 때서 먹어야 해요. 불편한 게 불행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탄식하게 될 거예요"라고 하니까 다신 부탄 얘긴 꺼내지 않으신다.

우리 사는 세상이 불행의 끝판을 보여 주니까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풍 드라마가 휩쓸고 사람들은 과거로,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것 같다.

부모가 자식을 때려죽였다는 세상을 본 적이 있을까. 게임에 미쳐 예쁜 딸을 학교에도 안 보내고 굶겨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갔다는 믿을 수 없는 부모 탈출 이야기 같은 사실을 접해야 하니. 그런데 기르던 개는 꼬박꼬박 밥을 챙겨줬다고. 게다가 기간제교사가 아이들에게 얻어맞는 장면에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아마 우리 같은 청년이 사회적 약자로, 불쌍하게 느껴지는 세상은 처음이시죠? 저도 부장인턴 소리 들으며 많이 당황했어요. 인턴만 3년째거든요. 처음엔 이 시간만 지나면 정식 사원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휴지처럼 버려지는 티슈인턴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돼요." 그냥 개그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암담한 현실은 개그조차 '갑질'이나 '흙수저' 이야기를 어김없이 등장시키게 된다.

그럼 어떡하라고? 경제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할 수도 없고 부탄 가도 부탄가스도 없는데 어쩌라고? 응팔(응답하라 1988)에서 동네 아줌마들이 같이 자장면 먹는 모습을 보며 너무 맛있어 보여 다음 날 자장면 사 먹었는데 그닥 맛이 없었다. 같이 먹어야 맛있는데 혼자 먹어서 그랬다. 그래 마을 공동체가 살지 않으면 불행한 거구나, 다들 아파트에 갇혀 모난 인생을 사니까 둥근 삶을 그리워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탄 사람들의 99%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이웃이 행복하다고 느껴서라고 했다나. 가족이 웃고 있고 친구가 웃고 있어서 자신도 웃는다는 거다.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돈보다 관계가 더 소중하고, 지금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이 행복하고 사이가 좋으니까 자신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우린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장 설날이 다가오면 아픈 상처를 상기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대가족 결투 시리즈'가 얼마나 많을지, 가족끼리도 상처를 보듬어주고 격려하는 데 익숙하지 않으니 이웃을 생각하기엔 너무 먼 이야기이다. 그래도 이번 설날엔 '공부 잘하냐?' '취직했냐?' 등등 영혼 없는 질문하지 말고 웃으며 안아줄 일이다. 많이 보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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