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뻔~한데도 유쾌한 재미 '님과 함께2'

입력 2016-01-22 00:01:00

애정없는 쇼윈도 부부에 설렐 줄이야

국내 방송계에서 가상결혼 콘셉트를 내세운 최초의 프로그램은 MBC '우리 결혼했어요'다. 주로 멋지고 예쁜 외모의 선남선녀들을 커플로 엮어 알콩달콩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주곤 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스타들이 설정과 실제를 넘나들며 가까워지는 모습은 파격적이었고 또 신선했다. 때로는 실제로 사귀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생길 정도로 시청자들은 스타들의 가상결혼에 몰입했다. 뜨거운 인기 속에 가상결혼이란 콘셉트는 방송계의 트렌드가 됐고 유사 프로그램 또한 속출했다. 대개 남녀 출연자들의 어울림과 훈훈한 모습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최근 판타지나 로망이 아닌 현실에 근접한 느낌을 자아내는 가상결혼 콘셉트 예능 한 편이 상승세를 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잘생기고 예쁜 출연자가 아닌 개그맨과 개그우먼을 내세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님과 함께 시즌2-최고(高)의 사랑'(이하 '님과 함께2')에 대해 알아봤다.

◆'님과 함께' 중'장년층 타깃으로 출발

애초 '님과 함께'는 중'장년층 시청자 공략을 위해 2014년 1월 론칭했던 프로그램이다. 임현식과 박원숙, 지상렬과 박준금 등 원로급 배우와 중년 연예인들을 섭외해 커플을 이뤘으며 '재혼'이란 콘셉트를 차용하며 젊은 층이 선호하는 '우리 결혼했어요'와 차별점을 뒀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성인 버전이라 불리며 2~3% 중반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했고, 중'후반부에 이르러 김범수와 안문숙이라는 스타 커플이 탄생하며 화제성을 끌어올렸다.

적당한 시청률에 적당한 화제성으로 무난한 주행을 했던 건 사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현재와 같이 '핫'한 콘텐츠로 부상하게 될 거라 생각하진 못했다. 채널의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였으며 어느 정도 전파를 타다 조용히 사라질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지난해 5월 시즌2가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시 시즌2의 첫 커플이 장서희-윤건, 그리고 시즌1의 후반 인기를 견인했던 김범수-안문숙 커플이었다. 배우 장서희가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는 등 이슈가 있었지만 어쨌든 중'장년층을 겨냥했던 시즌1의 '전략적 무기'를 버린 터라 기존의 가상결혼 프로그램과 차별화할 만한 포인트를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님과 함께' 측은 '만혼', 즉 혼기가 꽉 찬 남녀의 만남을 보여주겠다는 콘셉트를 강조하며 '우리 결혼했어요'와 거리를 두려 노력했다.

그래도 김범수-안문숙 커플이 다시 합친다는 것만으로 기존의 '님과 함께' 팬들이 움직여줬다. 2~3%대 사이를 오가며 안정적으로 전파를 탔다. 그저 '안정적'이었을 뿐 탁월하게 화제성이 높았던 건 아니다.

이후 제작진은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실 커플 전원 하차 및 새 커플 투입이란 흔한 전략이었는데, '비정상회담'으로 인지도를 쌓은 캐나다 출신 프로게이머 기욤 패트리와 당시 사귄 지 3개월 정도 됐다던 그의 실제 여자친구 송민서를 캐스팅해 이슈 몰이를 했다. 과거 '우리 결혼했어요'가 실제 커플이었던 황정음과 김용준을 출연시켜 재미를 봤던 터라 기욤과 송민서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또 한 커플은 윤정수와 김숙. 가상결혼 프로그램으로선 최초의 개그맨-개그우먼 조합이었지만 시작 단계에서 기욤-송민서보다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이후 새로운 두 커플의 방송 분량이 나간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방송계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윤정수, 그리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감초 역할 정도에 그쳤던 김숙의 만남이 예상치 못했던 시너지 효과를 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진행된 첫 촬영.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카메라가 있는데도 격하게 저항하며 '무효'를 외쳤다. 그러다 일은 일이고 촬영은 해야 하니 결국엔 '애정없는 쇼윈도 부부'로 카메라 앞에서 '일'이나 하자고 합의했다.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보여주던 가상결혼 프로그램에서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신선한 상황에 시청자들이 반응했다.

◆윤정수-김숙에 이어 허경환-오나미도 인기

윤정수-김숙 커플의 인기에 '님과 함께2'의 시청률은 4%대로 뛰어올랐다. 이들이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7%가 넘어가면 실제로 결혼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날 시청률도 함께 치솟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매회 상승세를 타다 최근 허경환-오나미 커플까지 새롭게 투입되면서 6%대에 육박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현재 '님과 함께2' 관련 기사 댓글창 및 커뮤니티와 게시판 등에는 '본방 사수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시청률 7%대를 넘겨 윤정수와 김숙을 결혼시켜버리자는 뜻이다. 현 상황에서 6%대를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니 이쯤 되면 제작진이나 윤정수, 김숙 모두 긴장할 만하다. 뜨거운 반응 속에 윤정수는 다시 인기를 되찾았고 김숙 역시 매력적인 인물로 부각돼 승승장구하고 있다.

허경환과 오나미 커플을 캐스팅한 건 개그맨-개그우먼 커플의 '케미' 덕을 톡톡히 본 제작진의 의도적인 전략으로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실제로 허경환을 8년간 짝사랑했던 오나미의 진심에 기반을 두고,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재미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말 그대로 지금 '님과 함께2'의 인기 요인은 기존의 가상결혼 프로그램과 노선을 달리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우리 결혼했어요' 외에도 비지상파에서 '남남북녀' '매일 결혼하는 남자' 등의 가상결혼 콘셉트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지금 '님과 함께2'처럼 커플이 서로를 비난하고 싫은 티를 내는 장면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윤정수와 김숙처럼 '스킨십 금지' '서로 사랑하지 않기' '실제로 이성친구가 생겼을 때는 벌금 1억1천만원' 등의 조항을 넣어 계약서까지 쓰고 가상결혼을 시작하는 케이스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랜 짝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여자와 그 짝사랑의 대상을 실제로 조합해 카메라 앞에 던져두는 용감한 기획 역시 처음이다.

그저 '처음'이기 때문에 눈길이 가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가상결혼 프로그램과 달리 가공된 로맨스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지 않기에 '님과 함께2'는 보다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제작진의 적당한 농간에 넘어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대와 가상결혼을 시작하게 된 출연자들은 상황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이 콘셉트가 은근히 재미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다. 그리고는 '웃음 유발자'라는 그들의 직업의식을 발동시키며 빠른 속도로 자신의 캐릭터 구축에 열을 올린다. 이 상황에서 억지로 웃음을 유발하려고 노력한다면 개그 프로그램으로 변질될 수 있겠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그런 시도가 크게 드러나진 않는다. 적당한 설정 속에서 진심인 듯 아닌 듯 무심히 주고받는 대화와 곁들여지는 코믹한 행동으로 리얼한 재미를 끌어낸다.

기존 가상결혼 프로그램 출연자 중에는 카메라 앞에서 상대를 열렬히 사랑하는 척 행동하고 그 뒤에서 실제 연인을 만나다 논란을 일으키고 하차했던 예도 있다. 그만큼 가상결혼 프로그램은 '가상'을 전제로 하면서도 '실제'인 듯 시청자를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떠안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님과 함께2'는 만남을 주선해놓고 굳이 서로가 잘 되도록 억지로 유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작진, 또 시청자들을 한층 편안하게 만든다.

물론, 향후 시청률이 7%가 넘은 후 윤정수와 김숙이 결혼 공약을 지키지 않고 발뺌한다면 괜히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가상과 실제의 접점에서 헤매야 하는 가상결혼 프로그램의 숙명에서 벗어날 순 없다. 단,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문제다. 장기간 방송을 타면 어차피 지루해지겠지만 아직까지는 '님과 함께2'를 보는 게 즐겁다.

완성도나 기획의 퀄리티 등 여러 요소를 떠나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두고 있으면 히죽 웃음이 나오니 '예능'의 기본에 상당히 충실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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