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초록빛 돼지 저금통

입력 2016-01-18 00:01:00

돼지 저금통은 서민적이다. 코흘리개 아이들의 용돈이나 서민들이 부스러기 돈을 모은다는 점에서 그렇다. 동네 문방구마다 빨간색 플라스틱 돼지 저금통이 한 묶음씩 내걸려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돼지 저금통은 대개 그 용도가 어린이들에게 절약과 저축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다. 자투리 동전을 모아 어린이들로서는 거금(?)을 마련하거나 학교에서 이웃돕기 용도로 사용했다. 가끔 용돈이 궁할 때 플라스틱 통을 비집고 동전을 빼 쓰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집집마다 한두 개쯤은 있던 돼지 저금통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동전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액면에 비해 동전 제작 단가는 높아졌고 돼지 저금통 속 동전은 화폐 유통을 가로막는 주범이 됐다. 동전이 꽉 찬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은행으로 달려가도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한국에서 빛이 바랜 빨간 돼지 저금통이 대만에서 초록빛으로 부활했다.

지난달 20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 있는 대만 야당 민진당의 공식선거운동 출범식에선 특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민진당 당사 앞에 모인 약 1천 명의 군중들이 차이잉원 민진당 총통 후보가 단상에 오르자 일제히 돼지 저금통을 치켜들며 환호한 것이다.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초록 빛깔의 돼지 저금통이었다. 반투명의 돼지 저금통 속에 든 동전들이 불빛에 반짝였다.

돼지 저금통은 민진당의 핵심 선거 전략이었다. 민진당은 한 달간의 공식 선거운동을 앞두고 14만 개의 돼지 저금통을 제작해 전국의 지지자들에게 보냈다. 집권 국민당은 대기업에서 정치자금을 챙기는 정당이고 야당인 민진당은 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돼지 저금통으로 선거를 치르는 서민 정당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돼지 저금통 전략은 성공했다. 지난 주말 치러진 선거에서 차이잉원은 105년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통에 당선됐다. 집권 국민당 주리룬 후보를 300만 표 이상 차로 누른 압도적 승리였다. 승리의 1등 공신은 물론 '돼지 저금통'이었다. 대만 국민들은 민진당이 뿌린 14만 개의 저금통에 7만대만달러(약 251억원)를 담아 건넸다. 물론 여기에 담긴 것은 동전뿐만 아니라 민심이었다.

우리나라도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여건 야건 돼지 저금통은 그냥 애물단지다. 그 속에 담긴 민심에는 관심도 없다. 이럴 때 국민들은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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