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문학노트] 과연 누가 갇혀 있을까?

입력 2016-01-14 00:01:00

강연호의 '우리 슬픔의 물음표와 느낌표'

나는 문을 연다 이미 열려진 문은/ 문이 아니다 자정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닫힌 문/ 비틀고 주리 틀어도 열리지 않는 문을 열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나는 똑똑히 본다//

나는 안다 내가 안간힘쓰며 밀어붙이는 문 반대편에/ 네가 있다는 것을, 너도 몸부림치며 문 연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 같은 힘으로 문 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모른다 도대체 너와 나 누가 갇혀 있는가를.

강연호의 '우리 슬픔의 물음표와 느낌표' 중에서

강연호의 시를 읽습니다. 비슷한 연배와 감성, 그리고 마음의 흐름을 읽습니다. 위의 시는 '비단길'(1994, 세계사)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은 강연호의 대표적인 사랑시집입니다. 시인 안도현이 그랬지요. 강연호는 그 누구를 향해 삿대질하지도 않고 밖을 향해 닫혀 있는 시보다는 안을 향해 열려 있는 시를 쓴다고. 자기 자신을 슬쩍슬쩍 꼬집으며 삶의 쓸쓸함에 대해, 고요에 대해, 우리를 글썽거리게 하는 것들에 대해 가만가만 중얼거리며 내팽개치고 싶은 과거도 지루한 일상도 그에게 와서는 단단하게 빛나는 한 편의 시가 된다고. 분명 강연호는 그런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말이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고 말이 마음이 되어 가슴 안으로 스며듭니다.

문을 엽니다. 매일 닫힌 문 앞에서 몸부림치며 문 열기를 계속합니다. 그런데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입니다. 그 반대편에 네가 있기 때문에, 너도 몸부림치며 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당기는 그 힘으로 인해 문은 결코 열리지 않습니다. 절박하고 안타깝고 슬픈 풍경입니다. 어느 한쪽이 포기하거나, 용서하거나 하면 쉽게 문은 열릴 텐데 오히려 서로를 간절하게 향하는 마음으로 인해 문은 결코 열리지 않을 판국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한쪽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합니다. 서로 사랑하니까요.

외롭기 때문에, 외롭지 않으려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외롭습니다. 그 사람이 결코 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 사람은 이미 길을 건너고 있는데 나는 붉은 신호등에 걸려 멈추어 있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외로움 같은 거, 그리움 같은 거 그까짓 거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붉은 신호등에 걸려 멈춘 그 순간부터 그 별거 아닌 것으로 인해 힘든 것이 사랑입니다. 그동안 밥 잘 먹고 건강하려 했지만 아직도 붉은 신호등은 바뀌지 않고 건널목 건너편에서 마냥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찾습니다.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서 평생을 보내기도 합니다. 삶의 무늬는 사람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사랑의 무늬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결국 사랑은 인간의 개별성보다는 보편성을 드러내는 셈이지요. 그것이 삶의 본질입니다. 내가 열려고 하는 문 그 너머에 어쩌면 네가 같은 힘으로 문을 당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만 깨달아도 사랑의 가장자리에는 다가갈 수 있겠지요. 딱 한 번만 물러나면 되는 것이지요. 그 쉬운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열리지 않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 탓인 게지요. 한겨울인데도 눈이 되지 못하고 내리는 비가 따뜻합니다. 비는 소리를 만듭니다. 소리는 낙숫물을 타고 마음으로 스밉니다. 방황하는 내 슬픔의 물음표와 느낌표가 곳곳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의문이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과연 누가 갇혀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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