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오후다/불타는 오후다/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언어 탐구에 많은 공을 들인 문인으로 평가받는 오규원 시인이 2007년 한 병원에서 임종 순간, 마침 병 문안을 온 제자 손바닥에 손톱으로 새겨 남긴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다. 시인은 사후를 염두에 두고 자연의 숲에서 자는 듯 죽음을 맞고자 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시로 살아온 삶을 시로 잘 마친 셈이다.
누구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불교가 아예 태어남과 함께 죽음을 인간의 네가지 고통에 포함시킨 까닭이다. 여기에 늙고 병듦을 더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인생사고'(人生四苦)로 꼽았다. 그래서 이 땅의 앞선 고승대덕(高僧大德)의 평생은 '오고 감도 없고, 삶과 죽음 역시 둘이 따로 아닌' 그런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참선과 수행 과정이었음이 틀림없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삶을 마치기까지 불교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기에 말이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옛 사람들 역시 죽음은 병도, 약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생각한 듯하다. 조선 유학자 이익의 '성호사설' 속에 나오는 세속 이야기도 그렇다. "약(藥)이 사람을 살릴 수 없고, 병(病)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사람에게는 운명이란 것이 있어서 질병이 아무리 괴롭힌다 하더라도 명(命)을 옮겨 놓을 수 없다. 고질을 앓으면서도 죽지 않고 오랜 세월을 연명(延命)하며 아무 병이 없는데도 갑자기 죽는 것을 보고서 정해진 명으로 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기에 담담하게 미리 사후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는 뒷사람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전남 장성 출신의 조선 청백리 박수량이 그랬다. 두 아들에게 "내가 죽거든…무덤을 크게 만들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그를 아낀 명종 임금도 그의 유언을 듣고 아무 글자가 없는 백비(白碑)만 세우게 했다. 대학자 이황 역시 임종 전 비석도 쓰지 말고 작은 돌 앞면에 자신의 묘임을 알리는 10글자만 쓰게 유언했다. 유학 가르침의 실천이었다.
지난 8일 그동안 논란이 됐던, 환자의 사망 시기만 늦추는 연명 치료를 중단토록 하는 이른바 '웰다잉(Well-Dying)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마지막 삶을 보다 품위 있게 마감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죽음을 첨단의술로 지연시키는 의료 행위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제 품격 있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뒷날을 미리 준비하는 삶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인 듯하다.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