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과 손자·손년들까지 온가족 7명 봉사 연수 합하면 50년 넘죠
TV 화면 상단의 '2,000원 후원 전화번호'에도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 게 요즘 현실이다. 그래도 이건 쉽다. 자신이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면 되는 일이니까. 자비'베풂, 뜻은 좋지만 부부, 한 가족이 한뜻으로 동행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선행에 2대가 합심을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세대별로 생각이 다르고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으니까.
3대를 넘어 4대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집안이 있다. 23년째 대구적십자사에서 봉사,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황광자(74) 씨와 그 가족들이다. 황 씨가 봉사에 나서는 길엔 항상 두 딸이 따라나선다. 이런 동행은 9년째 이어지고 있다. 또 그 딸들을 따라 (외)손자'손녀들도 열심히 불우가정에 반찬통을 나르고 있다. 황 씨의 선친도 충북 보은에서 의용소방대장을 지냈다. 4대 봉사를 넘어 5대 나눔 가정을 꿈꾸고 있는 대구적십자사 황광자 봉사자 가족들을 만나봤다.
◆캘린더엔 1년 내내 봉사 스케줄 가득
월-영대병원 거즈 접기'월드비전 반찬 배달, 화-노인종합복지관'다문화가정 방문, 수-황금종합복지관 점심봉사, 목-치매노인 목욕 봉사, 금-노인종합복지관 김장….
황 씨의 봉사 달력은 온갖 스케줄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설, 추석 같은 명절을 빼고 빈칸이 없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 활동이고 주말엔 홀몸노인 돌보기, 소년소녀가장 반찬 배달 같은 '사적 활동'이 또 이어진다. 이런 기관단체, 개인 봉사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대구적십자사에서 긴급 연락이 오면 언제든지 구호, 재난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서문시장 화재, 합천 헬기 추락,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 중앙로역 화재, 태안반도 기름 유출 같은 전국의 재난 현장엔 우리 적십자 대원이 제일 먼저 달려갑니다. 현지에 우리 손길이 얼마나 절실한지 저희가 제일 잘 아니까요."
재난 현장 외 지역의 국제 행사에 제일 먼저 뛰어가는 것도 적십자 회원의 몫이다. 황 씨는 그동안 대구에서 치른 '2002년 월드컵 대회' '2003년 대구하계U대회'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모든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공짜 경기 구경하며 유람 다니는 줄 알아요. 경기장, 행사장에 가면 온갖 잡무가 봉사자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3대가 봉사 공로 '봉사명문가상' 수상
황 씨가 봉사의 길로 접어든 건 남편 조재덕(76) 씨의 영향이 컸다. 국제라이온스클럽 회원이었던 남편을 따라 부부는 1982년부터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우연한 기회에 대구적십자사 봉사단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접어들게 되었다. 황 씨의 봉사 유전자는 두 딸과 세 명의 외손주, 친손주에까지 대물림돼 모두 3대 7명이 적십자사, 복지시설에서 활동하고 있다.
봉사 9년 차에 들어선 큰딸 조현민(50) 씨는 황 씨에 이어 적십자사 봉사단체 '한빛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작은딸 현숙(49) 씨는 총무로 일한다. 얼마 전 현민 씨의 딸 박주희(20'계명대) 씨가 재무를 맡으면서 한빛회의 핵심 자리를 모두 이들이 독점(?)했다. 홀몸노인 도시락 배달이나 소년소녀가장 방문 때는 외손자 송호진(18) 군도 따라나서고 작년부터 친손녀 조미성(중2) 양까지 합세했다.
"얼마 전 저희 가족 봉사 연수를 모두 계산해본 적이 있어요. 제가 25년, 두 딸이 18년(각 9년), 외손자, 외손녀 8년(각 4년), 친손녀 2년 해서 모두 50년이 넘었더군요. 저희 가족이 봉사로 반세기를 함께 보냈다는 점이 정말 흐뭇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2014년 대한적십자사 '봉사 명문가'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봉사명문가상은 3대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일정한 공로가 인정돼야 주어지는 상으로 적십자 가문의 최고 명예로 꼽힌다. 그동안 사회활동을 통해 30여 차례 크고 작은 상을 받았지만 황 씨는 이 '명문가상'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두 딸'손녀도 엄마'할머니따라 이웃사랑
적십자회원 9년차로 접어든 큰딸 조현민 씨는 어머니 하시는 일이 좋아 보여 봉사에 기꺼이 동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주로 희망풍차에서 반찬봉사, 운전봉사를 하고 현재 마일리지는 4천 시간을 넘어섰다. 봉사 중에 온갖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딱한 사정들을 보지만 특별히 기억되는 한 사람이 있다.
"이분은 휠체어를 타시고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었어요. 보통 한 번 방문하면 반나절은 이분들 수발을 들어주는데 많이 드시면 화장실 출입이 잦아지니까 우리가 있는 동안에는 일부러 식사를 하지 않는 거예요. 냄새 나는 곳에 봉사자들을 데려가기가 부담스러우셨던 거죠."
역시 엄마를 따라 2012년부터 봉사현장을 따라나선 딸 박주희 양도 봉사 유전자가 선명한 적십자 일꾼이었다. 할머니와 엄마를 도와 희망풍차 사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할머니를 따라 반찬통을 나르기 시작했는데 벌써 4년째 접어들었네요. 가끔 소년소녀가장 세대에 음식배달을 가는데 저희와 비슷한 또래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진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희망 풍차는 성금으로 돌아갑니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난 황 씨는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선친이 의용소방대장을 맡을 정도로 살림에 여유가 있었고 마을의 궂은일에도 늘 앞장섰다.
황 씨가 중학교 때 집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집안의 살림과 동생들 학비는 7남매의 맏이였던 그의 몫이었다. "큰 솥에 국수 한 줌을 넣고 시래기를 잔뜩 넣었어요. 양을 불리기 위해서였죠. 그걸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배를 채웠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황 씨의 눈엔 어느새 물기가 촉촉이 어린다. 이때부터 '없는 사람들'의 설움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나중에 살림이 나아지면 꼭 불우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결혼 후 대구에 정착한 황 씨는 서점, 완구도매상을 하며 열심히 살림을 일구었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공부를 시켰고, 아들 딸 3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형편이 나아지자 황 씨의 봉사 유전자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황 씨가 처음 이웃 사랑의 문을 노크한 건 라이온스클럽이었다. 클럽 임원이었던 남편과 부부모임에 자주 나가면서 봉사에 '맛'을 들였다. 이렇게 시작한 봉사는 10년 넘게 계속되었다. 그의 헌신에 감동한 단체에서는 대구지구 50년 역사상 최초로 회원의 부인에게 '무궁화대상'(2011)을 시상했다.
황 씨가 라이온스클럽 활동을 접고 적십자사로 적을 옮긴 건 1993년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평소 봉사 현장에서 적십자기를 보면서 그 깃발에 막연히 끌렸다.
"저 깃발이 펄럭이는 곳을 따라가면 나의 봉사가 세계와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어요. 봉사와 사랑으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이 짜릿한 전율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23년을 '빨간 기(旗)'를 가슴에 품고 적십자대원으로 한길을 걸어왔다. 인터뷰 말미에 황 씨는 한마디 당부를 전해왔다.
"'희망풍차'(4대 취약계층 돌봄 사업)는 적십자 회비로 운영되는데 지금 바람(회비)이 없어 풍차가 돌지 못하고 있어요. 적십자 회비 모금에 꼭 동참해 주십시오. 적십자 회비는 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 '바르게' 쓰이고 있습니다."
◇마일리지 4만 시간…봉사의 '성인'(聖人)급이죠
◆숫자로 보는 황광자 씨의 봉사활동
▶봉사 마일리지 4만 시간=황 씨에겐 휴일이 거의 없다. 주중엔 적십자사 대구시복지단체에서 봉사를 하고 주말에는 개인적으로 결연한 가정들을 찾아다닌다. 또 이 4만 시간에는 라이온스클럽 시절 10년 봉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 마일리지는 6만~7만 시간을 훨씬 넘어선다. 대구적십자사 서수희 팀장은 이 정도 봉사 마일리지는 지역에서는 전대미문의 기록이며 거의 '성인'(聖人)급이라고 말한다.
▶수상 표창 30여 회=선행 봉사엔 당연히 표창이 따라야 한다.(물론 당사자들은 그 점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지만) 선행에 적절한 보상이 주어짐으로써 주변에 이런 분위기를 진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황 씨는 구청장 표창부터 복지부 장관상까지 많은 상을 받았다. 2014년엔 유한재단(이사장 이필상)에서 주는 '유재라 봉사상' 복지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받은 상금 2천만원은 봉투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적십자사 성금으로 들어갔다. 이 외에 대구시목련상, 아시아재단상도 받았지만 황 씨가 가장 영예롭게 생각하는 상은 3대 봉사가 결실을 거둔 '봉사명문가상'이다.
▶사적(私的)인 기부 3억원=일부 은둔형 봉사자들은 자신의 선행을 거의 노출시키지 않는다. 황 씨도 적십자사에 들어오면서 직원들이 봉사 시간을 계산해줘서 마일리지가 집계되고 있을 뿐 그전에는 말 그대로 익명의 선행이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몰래 한 기부, 선행이 밝혀졌다. 바로 사적(私的)인 기부와 봉사였다. 황 씨는 공식적인 봉사활동 외 개인적으로도 결연, 후원,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주변의 소년소녀가장들에겐 장학금을, 홀몸노인들에게는 생활비를 지원해 준다. 이런 개인적인 기부는 월평균 100만 원 정도. 이 생활을 20년 넘게 해왔으니 3억원은 족히 될 것이다. 물론 봉사 마일리지 외 별도 선행이고, 기부금액도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 황 씨는 재물을 베풀 때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에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주위의 이웃을 돌아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연말에 받은 감사 연하장, 전화 한 통은 그를 눈물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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