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여신·천신 부부의 연…아들 2명 낳으니 가야국 왕되다
아! 가야산. 한때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 됐던 가야산.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 듯 성주군과 합천군, 고령군, 김천시에 걸쳐 이어져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풍경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고, 눈 덮인 가야산 설경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인 산길은 숲이 우거져 등산객들이나 이용하는 오솔길이 되고 말았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그 길은 삶의 애환이 점철돼 있다. 가야산 산길에 사람들의 삶과 눈물, 땀이 차곡차곡 배어 있다.
그 길에는 아직도 사람들 간의 마음과 옛것을 이어주는 역사가 스며 있다.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
법수사를 출발한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이 합천 해인사로 가기 위해서는 가야산을 넘어야 했다. 가야산만 넘으면 합천 해인사로 이어진다.
가야산은 오묘하고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어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가야산에는 8개 등산로가 있지만, 대부분 등산로가 험난하고 일반인이 걸어서 넘어가기에는 힘든 곳이다.
가야산 깊은 골 상아덤에는 여신이 살았었다. 아름다운 풍모를 지녔고, 기품은 성스러웠다.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이다.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정견모주는 가야의 땅에서 인간이 살기 좋은 터전을 가꿔 주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정견모주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으로 소원을 빌었다. 가야산에서 뿜은 기운은 널리, 더 높이 퍼져 나가 하늘에 닿았다. 하늘도 이 정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3, 4세기 어느 날 하늘 신이 오색 꽃으로 치장한 가마를 타고 강림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가야산 중턱에 하늘 신이 내려앉았다. 산신 정견모주와 천신 이비가(夷毗訶)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가야 건국의 모태가 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와 감응해 대가야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왕 뇌질청예를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뇌질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라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택리지는 "가야천 유역 고령, 성주, 합천 등은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씨 한 말을 뿌리면 120∼130말이 나오며 적어도 80말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농업용수가 풍부해 한재를 겪지 않는다"고 했다.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 가야산 자락에는 국내 유일의 군립식물원인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이 2006년 문을 열었다.
법수사를 출발한 환암대사는 여신 정견모주가 살았던 가야산으로 올라간다. 가야산 심원골의 오솔길을 따라 500여m 올라가면 심원사가 있다. 잣나무가 무성했던 심원골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고, 명당자리로 이름난 터에 심원사가 복원돼 있다. 심원사를 돌아서 가야산 자락인 북두림'솔티마을로 향했다.
◆심원사를 지켜온 삼층석탑
만물상과 돈봉 능선을 뒤에 두고, 성주의 너른 벌판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심원사. 대웅전 앞에 자리 잡은 삼층석탑과 대웅전의 추녀,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만물상 능선이 한데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선사한다. 심원사는 불자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 가야산을 찾은 등산객들에게는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법수사와 쌍벽을 이루는 심원사의 창건 연대는 8세기쯤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실화로 인해 1593년 불탄 후 다시 중건됐다.
경산지에는 "잣나무 밭이 남쪽 동불암에서부터 심원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리에 걸쳐 있었다. 만력(萬歷) 계사년(1593) 봄에 의병들이 실화해 심원사 일대까지 불타는 바람에 거의 씨도 남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조 23년(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考)에 심원사가 폐사로 기록돼 있어, 1600∼1700년 사이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폐사됐던 심원사를 꿋꿋하게 지켜온 것은 삼층석탑이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여주는 이 탑은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로 지정돼 있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89년에 복원했다. 탑의 높이는 4.5m. 상륜은 없어지고 각 층의 옥신석과 옥개석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이다.
2001년 심원사 터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유물은 중앙승가대학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대부분 유물이 항아리, 기와조각, 백자제기, 백자접시 등이다. 도깨비무늬 기와, 음각한 물고기문양 기와, 여러 가지 수막새와 암막새, 불상의 배후에 광명을 나타낸 의장인 광배를 탁본한 광배 탁본 등이 출토돼 심원사의 규모가 작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 줬다.
폐사됐던 심원사는 2001년 발굴조사 이후 복원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2004년에 삼층석탑을 지금의 관음전 옆(심원사 중앙)으로 옮겼고, 관음전과 문수전을 복원했다. 주 법당인 대웅전 복원도 마쳤다.
심원사에서 바라보는 성주 쪽 전망은 일품이다. 낙엽송 사이로 보이는 탁 트인 풍광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심원사 오른편 이정표에는 심원사에서 가야산 정상 칠불봉까지 3.6㎞라 표시돼 있다. 심원사를 지나 계곡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작은 샘이 나타난다. 샘터에서 주 능선까지는 40여 분 거리. 부지런히 걸으면 등산로 초입에서 상아덤 밑 주능선까지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고려 말 관료이자 학자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의 '기심원장로'(寄深源長老)라는 시에는 '심원고사재야산'(深源古寺在倻山-심원사 옛 절은 가야산에 있는데)이란 구절이 있다. 이로 미뤄 고려시대에 이미 심원사는 고찰로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국내 유일의 군립식물원 가야산야생화식물원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은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가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국내 유일의 야생화를 주제로 한 군립식물원으로 2006년 6월 문을 열었다.
가야산 자생식물과 야생화 자원보존, 자연학습 및 학술연구를 위해 건립된 야생화 전문식물원으로 야외전시원(7천933㎡)과 실내전시관(760㎡), 유리온실(991㎡) 등을 갖추고 있다. 야생화 전문식물원답게 복주머니난 등 한국 토종 야생화 403종 54만여 본뿐 아니라 224종의 자생식물 1만8천 본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식용'향기'양치'약용'수생'관상 등 6가지 테마로 구분되어 있는 유리온실에서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나도풍란'죽절초'희어리'섬시호'솔나리를 비롯해 117종 8천여 본의 야생화와 자생식물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실내전시관에는 야생화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진만 보면 어떤 야생화가 어느 계절에 피고, 지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골프장 부지로 거론됐던 북두림마을
가야산을 등지고 자리 잡은 백운리는 학발'가라골'우수동'북두림'신촌'솔티'진등'중기 등 8개의 자연촌락으로 형성돼 있다.
이 가운데 솔티마을은 조선 영조 때 배 씨라는 선비가 중기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소나무가 우거지고 나지막한 고개였던 곳에 터를 잡아 살게 되면서 솔티(松峴)라 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옛날 걸어다니던 길은 북두림-솔티-신촌-진등-나팔고개로 이어져 있다. 솔티마을은 앞산이 경남과의 도계라 생활권이 합천군 가야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경남'북 경계와 가장 근접해 있는 성주군 서변 첫 마을인 북두림은 마을 남쪽의 북두산(北斗山'692m)에 가야산 용기산성의 보조 망루인 북다락(鼓樓)이 있어 북두산이라 하고, 북두림뫼(북다락뫼)가 북두리미→북두림으로 지명이 변화했다. 이 일대에 최근 성주군에서 군립 골프장을 건설하려고 했었다.
마을 앞에는 성주군에서 건립한 누정(樓亭)인 정견대(正見臺)가 있다.
정견대 표지석에는 "(전략) 가야의 건국설화와 같이 화합과 상생, 큰 고을 성주의 위용과 여기에 오른 모든 이들이 밝고 신령한 풍광과 운세를 가슴 가득 담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견대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로 미루어 정견대는 가야산이 그동안 문헌으로만 알려져 있던 가야의 건국신화가 깃든 장소임을 알려 주는 첨병 역할을 맡도록 건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오르면 도계 너머 합천군 쪽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를 돌아보면 성주 쪽 가야산의 수려한 산세가 감탄과 감동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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