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문학노트] 사실 나는 귀신이다 - 김경주의 <드라이아이스>

입력 2016-01-07 01:00:03

한국 시사(詩史)에서 김경주의 등장은 기형적이고 돌발적인 풍경입니다. 김경주는 자신의 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대받은 적도 없고 초대할 생각도 없는 나의 창. 사람들아, 이것은 기형(畸形)에 관한 이야기다!' 문자로 형성된 문법에 그치지 않고 연극과 미술과 영화의 문법을 넘나드는 그의 시를 스스로 기형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시라는 것은 불가능에 대한 추구, 즉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라는 것, 결국 부재(不在)하는 언어에 대한 언어임을 김경주는 보여줍니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김경주의 앞의 시)이라 단언하면서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김경주의 앞의 시)이라고 말하는 김경주의 외침은 귀신처럼 내 몸에 오랜 시간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김경주의 시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축축한데 건조하고, 메말랐는데 눅눅하며, 쌀쌀한데 더운 이중성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드라이아이스'라는 도저히 시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차가운 사물을 문자로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쪽을 뜨겁게 만드는 언어의 향연. 그것이 김경주의 시입니다.

시는 외로움을 말합니다. 부재(不在)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이 외로움입니다. 외로울 때는 두 평 남짓한 다락방에 앉아 별을 본 적이 많습니다. 그 외롭고 차가운 골방의 시간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인데도 불현듯 그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는 여행에 대한 꿈을 꾸었고 유성의 긴 꼬리를 보면서 어디에선가 절망하고 있을 이름 모를 영웅을 떠올렸습니다. 구름 사이를 지나가는 달을 보면서 박목월을 생각했고 옆집 아이의 목욕하는 소리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맞이하는 아침은 그늘이었고 거기서 맞이하는 저녁은 노을빛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거기에 다시 간다 하더라도 그때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김경주를 만났고, 읽게 만든 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외로움은 꽤 귀족적인 감정입니다. 외로움은 세상과 삶이 전혀 나와 어울리지 않을 때 찾아옵니다. 삶에 내 모든 걸 던져 함몰되어 있을 땐 외로움이란 감정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도무지 세상과 사이좋게 지내기가 힘들 때, 세상과 관계를 맺을수록 관계만큼 상처받을 때, 결국 자기만의 성(城)을 쌓을 때, 바로 그 지점에서 외로움이 발생합니다. 그런 외로움은 단순히 수컷이 암컷을, 암컷이 수컷을 그리워하는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드라이아이스'에는 바로 그런 외로움이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손끝에 닿은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정말 나는 귀신일까요?

#연재를 시작하며

그동안 교육정책을 한답시고 어울리지 않는 낙서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목숨으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걸 다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떠나 있었지만 문학은 여전히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독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어쩌면 지독한 편식주의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편식이라는 개념이 특정 분야의 책만 읽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그 감성과 문장의 유려함에 끌려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칼의 노래'는 수십 번 반복해서 읽기도 했습니다. 문장만이 아니라 통제사가 지닌 비장한 마음속에 수없이 나를 새겨 넣은 탓이기도 하지요. 덕분에 '난중일기'를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공지영도 다시 읽고, 은희경도, 김연수도, 한창훈도, 전경린도, 김형경도, 양귀자도, 정미경도, 윤대녕도 다시 읽었습니다. 정진규도 만나고, 안도현도, 김수영도, 곽재구도, 도종환도, 이해인도, 나희덕도, 강연호도, 이문재도, 이성복도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모두 편식합니다. 멍하니 책을 읽어나가다가 한곳에 머물러 며칠을 보내기도 하는 바로 그 부분에 대한 편식. 한 편의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해나갈 저의 '문학 노트'는 그러한 편식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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