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터키의 한 통신사는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터키의 한 해변에서 익사해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알란 쿠르디였다. 쿠르디는 시리아 내전으로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탈출하던 중 지중해에서 배가 난파하면서 익사했다. 1994년 '수단의 굶주린 소녀'(독수리와 소녀)라는 사진은 작가 케빈 카터에게 그해 기자로서는 최고의 영광인 퓰리처상을 안겼다.
이 두 장의 사진은 전 세계인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불렀다. 전쟁과 기아의 참상에 그대로 드러난 어린이에 대한 공통적인 안타까움이었다. 분노는 달랐다. 쿠르디의 사진은 많은 공감을 일으키며 분노는 시리아 내전을 부른 이슬람국가(IS)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수단 소녀의 사진에 대한 분노는 수단 정부가 아니라 작가에게로 향했다. 아이를 먼저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은 것은 비인간적인 행동이라는 이유다. 3개월 뒤, 카터는 '어린아이에게 물을 주어야 할 것인가,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할 것인가'라는 메모를 남긴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비극적인 두 사건의 중심에는 아이가 있다. 모든 아이는 전쟁과 기아 등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약자다. 아이가 곧 우리의 미래여서다. 두 사진의 주인공이 아이가 아닌 성인이었다 해도 안타까움과 분노는 작지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보다는 공감대가 약하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인을 스파이로 몰아붙여 공개처형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공분을 샀던 IS가 이번에는 영국인 스파이 5명을 처형하는 동영상에 아이를 등장시켰다. 군 작업복 차림의 이 아이는 '불신자들을 살해하겠다'며 협박한다. 정보 당국은 극단주의적 성향을 보이다 시리아로 건너간 영국 여성 그레이스 '카디자' 데어의 6살짜리 아들 이사 데어로 추정했다.
'아이'는 순수함이나 선(善), 절대적인 보호 대상과 같은 뜻으로 인간의 보편적 양심과 직결한다. 이 때문에 자신이나 집단의 악한 목적을 위해 아이를 이용하는 것은 발악에 가까운 막장 판이다.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선전도구화하지 않은 독재자가 없을 정도지만 그들의 결말은 비참했다. 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전쟁 때 인질과 함께 아이들을 서방 폭격의 방패막이로 썼다가 끝내 패망해 사형장에서 삶을 마쳤다. IS가 잔악한 범죄 행위에 아이까지 동참시켰다는 것은 그들의 멸망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