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들 힘도 없었던 강도에 온정 답지, 왜?

입력 2016-01-04 21:07:04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끼니마저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 끝에 어설픈 강도 행각을 벌여 구속됐던 50대 가장에게 시민들이 십시일반 온정을 베푼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작년 7월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주차장에서 강도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한 5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다 몸싸움에서 밀리자 힘없이 흉기를 떨어뜨리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며칠 안 돼 강남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경기도 문산의 한 컨테이너에서 용의자 이모(53) 씨를 붙잡으면서 이 씨의 사연이 알려졌다.

그는 원래 연매출 100억원에 달하는 건축 자재 회사를 운영한 '사장님'이자 고교생 자녀 둘을 둔 가장이었지만 거듭된 사업 실패로 끼니를 못 이을 정도로 극단의 상황에 내몰린 상태였다. 재작년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학교 공사가 급감해 사업이 휘청거리더니 작년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직격탄을 맞아 결국 회사가 부도나고 빚더미에 앉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80대 노모는 암 투병 중이었다.

그는 지인이 마련해 준 컨테이너에서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생활했다. 강도질을 하려다 흉기를 떨어뜨린 것도 이틀간 물만 먹어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이 씨는 털어놨다. 그는 조사실에서 형사들이 시켜준 볶음밥 곱빼기를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어치우기도 했다.

이 씨의 이런 사연이 보도되자 범죄자인데도 사정이 너무나 딱해 돕고 싶다는 시민의 문의전화가 언론사와 강남서에 쏟아졌다. 뉴스를 보고 이 씨가 너무 안돼 눈물을 흘렸다는 30대 주부부터 자신도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다는 중년의 사업가까지 이 씨를 위해 써달라며 돈 봉투를 내밀었다. 사업에 실패했다가 재기했다는 한 남성은 500만원을 쾌척했고, 한 중년 남성은 강력팀 사무실을 직접 찾아와 30만원이 담긴 봉투를 놓고 가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고, 마트를 운영하는 한 시민은 생필품을 차에 가득 싣고 이 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80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보탠 돈은 2천여만원에 달했다. 이 씨는 검거 당시 고3 딸과 고1 아들을 두고 있었으나 시민의 성금 덕분에 두 자녀의 학비 걱정은 덜 수 있었다. 반에서 1, 2등을 다투며 공부를 잘했다는 딸은 서울의 한 대학교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있다. 아들은 어려운 가계를 생각해 대학 진학 대신 군 부사관을 꿈꾸고 있다.

수사팀 앞으로는 이 씨가 구치소에서 틈틈이 후회와 반성,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각오를 담아 꾹꾹 눌러 쓴 편지가 10여 통 넘게 도착했다. 이 씨의 편지에는 자신의 범행에 대한 반성과 함께 '범죄자지만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시민들에게 출소하면 꼭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수사팀 관계자는 전했다.

주 2회 면회를 간다는 이 씨의 동생은 3일 "형이 범행을 많이 후회하고 있다"며 "도움을 주신 시민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이 씨는 작년 11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