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가 부른 대구 산악인 '박무택·백준호·장민'

입력 2016-01-03 20:00:31

박무택·장민, 세계 최고봉 등정…그리고 실종

영화
영화 '히말라야'에서 칸첸중가를 오르고 있는 대원들.
사진 왼쪽 첫 번째가 고 박무택 씨이며, 세 번째가 초
사진 왼쪽 첫 번째가 고 박무택 씨이며, 세 번째가 초'중'고 16년 동안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예천경찰서 이준원 강력팀장. 이준원 씨 제공 작은 사진은 박무택. 경일고 제공

"더 이상 못 움직이겠습니다. 비부악을 해야겠습니다. 산소가 없어 숨을 못 쉬겠어요."

2004년 5월 18일 15시 40분. 34세 젊은 박무택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을 감싸고 있는 극한의 공기는 그렇게 한 인간의 마지막 교신마저 얼려버렸다.

그로부터 11년. 영화 한 편이 설산에 깊이 잠들어 있던 지역 산악인들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16일에 개봉된 '히말라야'가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영화의 주인공인 엄홍길(황정민 분), 박무택(정우 분), 백준호(박정복, 김인권 분), 장민(정재헌 분) 대원에 대한 애도 열기가 지역에서 뜨겁게 일고 있다. 이런 등정 비화는 그간 다큐나 책으로 발간돼 일반 시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현장의 감동이 전해지면서 이젠 추모 분위기까지 일고 있는 것이다.

◆엄홍길'박무택 산악인 우정 감동=2004년 계명대에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꾸려졌다. 개교 50주년을 맞아 OB, YB가 함께 세계 최고봉을 등정하자는 취지였다. 박무택, 백준호, 장민 등 9명의 원정대가 결성됐다.

5월 18일 박무택과 장민은 세계 최고봉 등정에 성공했다. 기쁨도 잠시 하산 길에 둘은 탈진, 설맹(雪盲)이 닥치면서 '죽음의 지대'에서 위기를 맞는다. 급히 구조에 나섰던 백준호도 실종되고 만다. 이 셋을 구하기 위한 '엄홍길 휴먼원정대'가 꾸려지면서 영화는 중반으로 접어든다.

휴먼원정대 엄홍길 대장의 시선을 따라 전개되는 영화 스토리상 제일 먼저 주목을 받는 사람은 박무택이다. 1989년 계명대 산악회가 히말출리 원정 때 둘은 구조대와 등반대원으로 스쳐가듯 만났다.

그 후 둘은 절친한 등반 파트너가 되었고 칸첸중가, K2, 시샤팡마, 에베레스트를 함께 올랐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은 2000년 봄의 칸첸중가 등반이었다. 당시 히말라야는 사상 최대 적설량을 기록했다. 베테랑 셰르파도 도망치듯 내려가 버린 상황, 둘은 설산에서 미아가 되었다. "8,500m 절벽에 꼼짝없이 고립되면서 둘은 말없이 피켈로 빙벽을 찍기 시작했어요. 목숨을 건 비부악,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죠." 엄홍길 대장은 얼마 전 통화에서 당시를 술회했다.

◆백준호 '의로운 산행' 재평가 움직임=당시 산악부에서 활동했던 산우(山友)들이나 영화에 깊이 몰입했던 관객들의 공통된 반응이 있다. 바로 백준호 평가에 대한 아쉬움이다. 엄, 박 두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한편으로 비중이 줄어든 결과일 것이다. 영화에서도 그 점이 미안했던지 엄 대장은 기자회견 장면에서 백준호의 '목숨을 건 박무택 구조 산행'을 한국 산악 사상 최고의 등정으로 꼽고 있다.

사실 데드존(Dead Zone)이라는 8,000m 이상의 높이에서의 구조 실패 가능성은 100%, 생환 가능성은 제로라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그는 칠흑 같은 히말라야의 어둠을 뚫고 길을 나섰다. 평소 그의 별명인 '미련곰탱이'처럼.

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건고를 졸업한 그는 계명대에서 산악부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정부는 의사자(義死者) 심의위를 열고 백 대장을 의사자로 결정했다. 한국 최초의 산악인 의사자였다. 모교인 대건고에서도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아 교정에 그의 흉상을 세워 추모하기로 했다고 한다.

◆"세 영웅 추모사업 서둘러야"=영화를 본 대구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지역에 이렇게 훌륭한 산악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분위기다.

장병호 대구등산학교장은 "1962년 대한산악연맹을 창립할 때 대구 등산인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을 정도로 대구는 산악도시 전통이 강했다"며 "당시 사고에서 너무 아까운 인재들을 잃었고 이 사고가 없었다면 대구산악계가 큰 도약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기획, 주도한 엄홍길 휴먼원정대 대장은 "박무택, 백준호, 장민 같은 대구경북 산악인들의 희생과 업적이 영화로나마 세상에 알려져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고 "이들을 위한 추모시설, 기념관 건립도 논의되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진문(55) 대구환경운동연합 편집위원장도 "세 사람의 히말라야 원정 비화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영화로 접하니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극장에서 상당수 관객이 손수건을 적시고 티슈로 눈물을 찍어낸다고 한다. 이 투명한 눈물의 초점이 맺혀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유족이다. 취재 중에 유족, 산우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들에게 상처는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로도 위로가 부족할 그들에게도 한 조각 채무 의식은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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