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금수저 YS

입력 2015-12-31 01:00:02

2015년에도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김 전 대통령 사후 매일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에서 그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조명 과정에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경남 거제의 멸치잡이 어장과 배를 소유한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1953년 제3대 총선에서 만 25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을 때 그의 당적은 자유당이었다. 이 정도의 이력만 봤을 때 정치와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젊은 친구들은 이런 말을 할 거다. "뭐야, YS도 금수저였어?"

맞다. YS는 금수저였다. 사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치판에서도 YS가 자유당에서 공화당으로 갈아타기만 했다면 다선 의원의 영광 정도는 쉽게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정치를 하지 않아도 주색잡기에 놀아나지 않았다면 거제도에서 다수 선박을 소유한 동네 부잣집 어르신으로 편히 여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를 향한 고난의 길을 걸었다.

사사오입 개헌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YS는 당적을 민주당으로 옮겼고,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했다. 비록 '3당 합당'과 'IMF 경제위기'라는 정치'경제적으로 거대한 실책도 있었지만 IMF는 이전 정권하에서의 한국경제가 갖고 있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 무조건 YS만 욕할 수는 없다. 또 3당 합당 당시 '야합이다' '배신이다'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처럼 비난에 속죄라도 하듯 임기 초 사정의 칼날을 무시무시하게 휘둘렀던 것도 김 전 대통령이다. 적어도 한때는 자본과 정권에 부당한 탄압을 받았던 노동자의 옆에 섰었고, 자신의 과오에 대해 어떻게든 만회하고 속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15년 가장 화제가 된 단어가 '금수저'라고 한다. 더 이상 자본이 만들어 낸 계급을 뚫을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에 '수저계급론'이라는 게 나왔을 것이다. 1970년대 엄혹한 권위주의 독재 정권 시절, 핍박받는 국민에겐 그들과 같이 싸워 준 든든한 금수저 YS가 있었다. 적어도 YS는 '가진 자' '있는 자'가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세상에 도움이 되는지를 어렴풋이 알았던 사람 같다.

모든 것을 '돈'으로 치환해 판단하고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며 보통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을 짜내는 지금 금수저들에 비하면 YS는 성인(聖人)에 가까운 금수저라 하겠다.

2016년에는 '수저계급론'과 같은 사이비이론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YS 같은 염치를 아는 금수저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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