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용변에 흩어진 내 물고기가 내가 찾는 마음일세"
오어사에서 바라보는 오어지는 빛을 듬뿍 머금고 영롱하다. 게다가 야트막한 산이 반월을 그리면서 빚어내는 오어지는 그지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한다. 잠시나마 멍청해지고 풍경에 얼혼이 난다.
근자에 만든 출렁다리가 감사둘레길의 출발점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오어사는 찬탄의 음성으로 피는 황홀한 연꽃이다. 나의 미적 감각으로는 완벽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첨벙하며 물고기 한 마리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른다. 황금색 비늘에 반사되는 빛의 순간적인 산란에 숨이 멎는다. 저렇게 수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쳐 빛을 뿌리고 사라지면서 그린 물결의 잔잔한 파문이 가슴까지 밀려온다.
오어사는 원래 신라 진평왕 때 지어진 항사사라는 절이었다. 원효가 도반 혜공과 함께 이곳에서 수도할 때 절 앞 개천에서 같이 용변을 보는데 변이 풍덩 물에 떨어지자(옛날에는 인간의 변이 물고기의 밥이었다) 잠시 놀란 물고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더 맑은 물이 흐르는 상류로 가는 물고기를 보고 서로 "내 물고기(吾魚)"라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 마음의 근원은 있음 없음을 떠나 맑고 깨끗하다. 맑고 깨끗한 상류로 가는 저 물고기, 맑고 깨끗한 마음의 근원을 찾아가는 나, 저 물고기가 바로 내가 찾는 마음의 물고기이다. 그래서 그 후 절 이름이 오어사 즉 '내 물고기 절'로 바뀌었다.
계절은 깊을 대로 깊어가고 낙엽은 무시로 발아래 구른다. 이제 무거운 것 다 내려놓고 나목처럼 벗어버린 마음으로 걷는 길은 활짝 열린 거리낌없는 길이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제법 가파른 경사길을 오른다. 감사함에 대한 글귀들이 보인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말이 눈길을 끈다. 고도가 높아지며 오어지에 투영되는 산 그림자가 아롱아롱 더 아름답다. 원효암이 보이는 능선에 당도해 잠시 땀을 훔친다. 원효암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능선 고즈넉한 곳에 연못이 있다. 산 능선에 어떻게 연못이, 원시림 가운데 신비한 분위기다.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어디서 산신령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오늘의 화두는 도끼가 아니고 물고기입니다, 산신령님. "이 물고기가 네 물고기냐" 고 묻는 산신령이 연못 물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금도끼 은도끼 전설은 산 안개 같은 환상이다.
조금 내려오면 원효암이다. 원효의 삶은 자유와 해학이다. 도무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걸림이 없는 삶을 살다 간 대자유인이다. 그는 스스로 소성(小姓), 복성(卜姓)거사라 했는데, 소(小)는 가장 작다는 뜻이고, 복(卜)은 아래 하(下)자 위의 한 일(一)을 없앤 아래의 아래라는 뜻이다. 가장 낮은 사람, 자기를 가장 낮추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원효는 자기를 가장 낮추어서 가장 위대한 고승이 된 분이다. 성경에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말씀이 있다. 서로 상통하는 진리다. 원효암에서 오어사까지는 불과 10분 거리다. 오어사에서 출렁다리, 능선, 연못, 원효암으로 해서 다시 오어사에 도착한 것이다.
오어사는 운제산으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부도탑군을 지나고 자장암에 오른다. 산여계곡의 초입, 수려한 낭떠러지 절경을 뽐내는 암벽 위에 자장암은 반 눈을 뜨고 앉아 있다. 자장은 7세기 초, 신라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신라에 화엄의 큰 뜻을 최초로 전하였고, 신라의 3대 보물인 황룡사 구층목탑을 조성하여 외세 침략을 막고자 했다. 여기서 운제산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간다. 바윗재와 깔딱재를 지난다. 이 코스는 해병들의 훈련 코스로도 유명하다. 해병의 긍지라는 표지판이 있다. 그중 "나는 찬란한 해병대 정신을 이어받은 무적 해병이다"는 글이 유독 시선을 잡는다. 대왕암에 도착한다. 소원기도를 하는 제향단이 이채롭다. 홍은사로 가는 가파른 길로 내려간다. 적요한 산속 명당자리에 있는 홍은사는 마음의 깨달음으로 피는 우담바라 꽃과 닮았다. 이제 산여계곡 길 따라 자장암으로 돌아간다. 지나온 수려한 산정을 올려다보니 대왕암이 구름을 물고 있다.
근심도 우울도 씻겨나가는 계곡길은 그 느낌이 아주 좋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하루의 추억이 배낭에 가득 찬다. 자장암을 거쳐 오어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전설과 깨달음, 감사의 향기에 흠뻑 젖은 따뜻한 하루다. 걸을수록 사랑이 더해지는 오어사 감사둘레길.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더없이 좋은 힐링 코스다.
글 김찬일 대구문학인트레킹회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구문학인트레킹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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