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힐링토크] 나덕렬 치매전문의

입력 2015-12-28 01:00:05

치매는 습관이 만든 병, 뇌 건강 '진인사대천명'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lily_37@naver.com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lily_37@naver.com

나덕렬(59) 교수. 그는 각종 신문이 뽑은 한국 최고의 치매전문의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한치매학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뇌신경센터장을 맡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 학술지에 260편 이상 논문을 게재하여 세계적인 뇌과학자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료와 연구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아주 겸손했고 진지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면서 그의 환자들은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나 교수의 진지한 태도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교수님이 쓴 '뇌미인'이나 '앞쪽형 인간'을 읽으면 종교서적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읽으셨다니 감사하다.(웃음) 치매 환자를 대하다 보니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신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됐다.

-'우주의 다양성을 믿는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모두는 천재에서부터 치매까지 일직선상의 어느 한 점을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사고력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치매환자와 더불어 사는 삶을 신기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교수님에게 치매는 무엇인가.

▶치매는 인생의 하산길에 만나는 여러 것 중 하나다. 어쩌면 오래 사는 특혜를 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생활만 잘 하면 얼마든지 예방도 가능하고 진행도 늦출 수 있는 질환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치매에 대한 연구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치매를 예방할 수 있나.

▶많은 사람들은 치매는 일종의 노화 과정이며 유전적인 소인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생활습관만 잘 해도 치매 발병을 줄일 수 있다. 매일 운동을 하면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을 80% 줄일 수 있다. 담배와 술을 줄여도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흡연을 25~30년 하면 치매 위험이 250% 증가한다. 과음과 폭음은 인지장애에 걸릴 확률을 1.7배 높이고, 비만인 사람은 3년 후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정상체중보다 1.8배나 높다. 생활만 잘 하면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다.

-치매예방 노력은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는가.

▶젊었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의 경우 적어도 40, 50대부터 예방노력을 해야 한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20, 30대부터 치매를 일으키는 뇌변화가 시작된다. 치매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일찍 예방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얼굴을 다듬듯 뇌를 다듬어 '뇌 미인'이 되자고 했다.

▶누구나 피부 관리보다는 뇌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뇌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뇌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 관리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뇌 관리만 잘하면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이 생기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뇌 관리를 잘하는 방법이 있나.

▶진인사대천명이다. '진'땀나게 운동하고, '인'정사정없이 담배를 끊고, '사'회활동하고, '대'뇌활동을 많이 하며, '천'박하게 술을 마시지 말고, 수'명'을 연장하는 식사와 체중조절을 하면 된다.

-그것만 하면 치매예방이 보장되는가.

▶말을 많이 하고(speaking), 쓰고(writing), 활발하게 토의하고(Active Discussion), 발표(Presentation)하면 뇌에서 판단 기능을 맡고 있는 전두엽이 활성화될 수 있다. 외국어 공부도 치매를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다. 60대를 대상으로 3개월간 이런 훈련을 했더니 그렇지 않은 군에 비해 월등히 뇌피질이 튼튼해졌다. 산 이름을 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TV시청처럼 수동적인 활동만 하면 인지장애에 걸릴 확률이 10% 증가한다.

-최근에 치매예방에 도움을 주는 '치매예방학습지'도 펴냈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을 기록하고 매일 체크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하루 서너 장씩 문제를 풀면 된다. 책은 숫자 테스트를 통해 계산능력을 키우고 단어문제를 풀면서 시공간능력과 주의집중력, 기억력을 향상시키도록 만들어져 있다. 3개월 동안 할 수 있는 분량이다. 긍정점수를 체크하는 내용도 있다.

-긍정점수는 왜 체크해야 하는가.

▶긍정적인 사람일수록 치매에 걸리더라도 '예쁜 치매'에 걸린다. 공격적이지 않고 파괴적이지 않으며 어린아이처럼 되는 치매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무조건 행복하게 살겠다는 결심을 하면 도움이 된다.

-'예쁜 치매'가 무엇인가.

▶예쁜 치매는 평소에 자신의 행동습관이나 사고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서 치매에 걸리더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예들 들어 치매에 걸려도 '고맙다'고 말하고 미소를 보내며 착한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다. 예쁜 치매에 걸리기 위해서는 긍정적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화해야 한다. 뇌에 알통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계산을 오랫동안 한 사람은 치매에 걸려도 계산만은 잘한다. 똑같은 이치다. 평소 좋은 생활태도를 가지면 치매에 걸려도 좋은 태도를 보이는 '예쁜 치매'가 된다.

-치매를 가정파괴범이라고 여기며 두려워한다.

▶지금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환자다. 치매로 발전할 수 있는 경도인지장애를 가진 사람까지 포함해서 65세 이상 노인 중 20%가 치매환자인 것이 현실이다. 치매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장수병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치매에 걸렸다는 것은 오래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오해 없길 바란다고 했다.)

-혹시 가족이 치매에 걸렸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황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담담히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대처해야 된다. 결코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병이 아니다. 당사자와 가족, 병원이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증상에 따른 처방을 내리고 치료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치매는 보호자를 힘들게 한다.

▶힘든 것이 사실이다. 어렵겠지만 자신을 한 단계를 뛰어넘게 하는 '마음 공부'의 기회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사람에 대해, 혹은 나 자신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그만한 기회가 없다. 보호자들이 '이 고통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꼭 필요하기에 왔을 것이다'라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무척 어렵겠지만.

-교수님만의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는가.

▶마음의 바구니를 100으로 채우지 말고 1000으로 채우려고 한다. 100으로 채우고 있는데 어느 날 불행이 닥쳐와 100이 없어지면 0이 된다. 그런데 1000으로 채우면 100이 없어져도 900이 남는 것이 아닌가. 이것도 힘들면 응급실을 다녀보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교수님이 치매판정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우선 감사할 것이다. 치매는 일반적으로 장수병이므로 치매에 걸렸다면 수를 누렸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몸과 뇌의 관리를 원 없이 했으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또 치매를 초기에 발견하여 미리미리 대처하여 예쁜 치매가 되도록 할 것이며, 치매는 서서히 나빠지는 병이므로 정리할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할 것 같다. 그리고 죽은 후 뇌를 기증할 생각이다.

-치매는 과연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환자의 40% 정도는 의사로서 해줄 것이 있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초기에만 치료를 시작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앞으로 10년이면 상당한 수준의 치매 치료법이 나올 것이다. 치매를 되도록 늦추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가.

▶의과대학 시절 본과 1학년부터 신경해부학과 신경생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과 3년 때 당시 교수님이 정상 뇌와 병든 뇌를 비교해 주셨는데 그때 보았던 뇌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군의관 시절조차 뇌를 만지고 있던 사람으로 기억될 정도로 내 곁에는 항상 뇌가 떠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냥 뇌에 끌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치매 치료를 하면서 갈등도 많았다고 들었다.

▶뇌를 공부하면 신의 영역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 한 인간에게 준 프로그램을 인위적으로 되돌리는 것이 과연 가능하며, 이러한 노력이 합당한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알츠하이머로 진단받은 환자가 우리 병원에 왔었다. 그런데 보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알츠하이머보다 다른 병이 의심스러웠다. 정밀 검사를 통해 간질 뇌전증인 것을 알아냈고 약을 사용했더니 말끔히 좋아졌다. 반면 안타까운 환자도 있다. 49세의 젊은 전두엽 치매환자였는데 그 아내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약도 한번 쓸 수 없는 이런 병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몸부림치며 우는 부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퇴직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뇌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규모 그룹으로 뇌와 삶을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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