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분의 1의 남자
미네무라 겐지 지음/박선영 옮김/레드스톤 펴냄
지금 세계는 시진핑, 이 한 사람을 주목하고 있다. 지금 시진핑의 정식 직위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다. 말하자면 국가주석은 대통령, 총서기는 공산당 대표에 해당한다. 일당 독재 체제인 중국에서 당과 군의 권력까지 오롯이 한 손에 움켜쥔 사람이 바로 시진핑이다. 세계 2위의 경제 강국, 인구 13억의 대국이 그의 손짓 한 번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런 막강한 권력을 쥔 시진핑은 사실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1997년 제15회 당대회 즈음으로 시계추를 되돌려보자. 중국 공산당의 지도 기관은 중앙위원회라고 불리는 곳이다. 8천600만 명의 당원 중에서 선거로 뽑힌 200여 명의 중앙위원과 150명의 중앙위원 후보로 구성된다. 중앙위원은 대부분 정원보다 8% 정도 많은 후보자 중에서 당내 선거로 선출된다. 이 중에서 총서기도 총리도 태어난다.
제15회 당 대회에서 푸젠성 부서기였던 시진핑은 중앙위원에 들지 못했고, 겨우 중앙위원 후보에 만족해야 했다. 발표된 명부 151명 중에서도 151번째 최하위 득표율을 기록했다. 원래 중앙위원 후보 정원은 150명이었지만 시진핑을 차세대 지도자로 밀던 고위 간부들이 무리해서 정원을 늘린 덕분에 가까스로 당선될 수 있었다. 리커창 현 총리는 당시 이미 중앙위원이었다. 이때 시진핑의 당내 서열은 344위에 불과했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2007년 10월 22일 제17회 당 대회 폐막식 다음 날, 새롭게 발족한 신지도부 인사 회견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당 서열에 따라 무대 한쪽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진핑이 서열 6위, 리커창이 7위였다. 수많은 외신기자들과 중국 전문가들은 '믿을 수 없는 역전'이라며 경악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서열 1~5위의 원로 상무위원들이 5년 뒤 은퇴할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던 만큼, 시진핑이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등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5년 뒤 제18회 당 대회에서 시진핑은 총서기에 올랐다. 외부에서는 도저히 알기 어려운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 총국 특파원이었던 저자도 같은 의문을 가졌다. 시진핑 체제 탄생의 시작을 목격한 그는 내막을 알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중국 당국에 구속되고, 취조당한 것만 10번이 넘었다. 그리고 베이징, 상하이, 다롄, 충칭,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도쿄 등 '현장'을 누비며 끝까지 물고 늘어진 끝에 미국과 중국 당국자 50여 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논픽션을 탄생시켰다.
충격적인 증언이 이어진다. 은퇴 후에도 군부에는 쉬차이허우를, 당에는 저우융캉을 심어놓고 후진타오 체제를 허수아비로 만든 채 상왕 정치를 펼치며 25년 이상 권력을 휘둘러온 '불사신' 장쩌민, 덩샤오핑의 간택을 받은 후진타오, 황태자 리커창…. 이들 모두를 딛고 시진핑이 왕좌에 오르기까지, 베이다이허의 '여름전쟁'부터 '원로정치의 종언'에 이르기까지 숨 막히는 권력 투쟁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마지막 레이스에서 선두를 빼앗긴 왕태자 리커창의 비극과, 쿠데타까지 일으키며 보시라이를 왕좌에 앉히려 했던 저우융캉과 쉬차이허우의 비밀, 2012년 3월 19일 베이징에서 벌어진 군부와 무장경찰의 충돌을 비롯해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대사건의 뒷이야기도 흥미를 돋운다.
이 책은 생생한 증언과 현장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중국 공산당의 감춰진 속내를 엿보고 있노라면 '권력'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권력과 사람, 욕망과 절망의 줄다리기,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일들이 지금 이웃나라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순자의 성악설을 받아들인 '절대' 지도자 시진핑의 '중궈멍'(中國夢)을 보다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33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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