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검사인가/서영제 지음/채륜서 펴냄.
참여정부(노무현 정권) 시절 서울지검장을 지낸 서영제 리인터내셔널 법률사무소 고문 변호사가 28년간의 검사생활을 자서전 식으로 펴낸 책이다. 자신을 '좌충우돌, 돈키호테, 결벽증, 독불장군, 수도승'으로 묘사하는데, 그의 책을 읽어보면 대체로 맞는 표현 같다. 상명하복의 질서를 중시하는 검찰조직에서 그가 사건을 처리한 방식을 보면 그런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서영제 검사가 서울지검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2003년 3월이다. 청주지검장으로 있던 사람이, 그것도 초임 지검장이 검찰조직의 핵심 요직인 서울지검장으로 발탁된 것은 지극히 예외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도 없었고, 이른바 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 진영을 위해 도움을 준 적도 없었다. 수사과정에서 오히려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마찰을 빚고 있던 터였다. 노무현 대통령 쪽에서 볼 때 '운명 공동체'는 고사하고 '정치적 동조자'가 아니라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임명 뒤 청와대에서 검찰총장을 비롯한 전국 검사장들과 대통령이 상견례를 겸한 오찬이 열렸다. 이때 노 대통령은 "검사장께서는 사법 시험 몇 회시냐?"고 물었다. 그만큼 서영제 지검장에 대해 아는 바가 적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서울지검장에 발탁된 것에 대해 "유능한 사람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제외하다 보니 대안이 없어 내게 맡긴 것 아니었을까" 짐작한다고 말한다.
위 예는 지은이와 노 전 대통령의 관계를 알려주는 동시에, 이 책의 서술방식을 보여준다. 개인적 생각을 많이 담아 검찰과 수사, 정치권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지은이는 "검찰수사에서 정치적 외압을 최대한 막아준 장관"이라며 "새천년민주당 정대철 대표와 노건평(노무현 대통령의 형) 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을 때도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었다"고 밝힌다. 원칙과 상식적인 입장에서 입장표명은 있었지만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대철 대표 강제구인 소식에 정치권에서 '검찰이 간이 부은 모양'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강금실 장관은 "여당 대표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전화를 낸 것이 전부였다. 필자는 "이는 적어도 역대 법무장관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일면이다"고 덧붙인다.
2003년 10월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국내에 37년 만에 귀국했다가 구속된 것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연설까지 하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통령은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그 사건을 지휘했던 서영제 지검장은 책에 이렇게 쓰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한에는 그 규정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니까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독재정권하에 만들어졌더라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추인된 법률이다. 국가보안법을 악법이라고 규정하고 폐지운동을 펼 수는 있지만 폐지되기까지는 준수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저항권을 거론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지은이는 "수사검사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수사를 조절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럴 거라면 검사직을 내던지고 정치를 하는 게 올바른 처신이다"며 "검사는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지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이 책은 지은이가 초임 검사 시절부터 서울지검장까지 검찰에 몸담으면서 맡았던 수많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사건, 혼외자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인간적 면모, 삼성의 편법상속 의혹을 공소시효 한 달을 남겨놓고 수사에 착수한 사연, 법무부 간부와 원색적인 욕설을 주고받으며 싸웠던 신상규 전 서울지검 3차장의 승진 탈락, 검사부인과 내연관계를 맺었다가 고소당한 야당의원 이야기 등이다.
또 대검 검사장과 친분 있는 사람을 구속하려고 했다가 검사장으로부터 "네가 총장 다 해 먹어라"는 폭언을 들었던 일, 낮잠을 자는 일이 없고, 신문 읽고 커피 마시는 시간조차 일정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법무연수원장 시절 이야기 등 검찰 조직 안팎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은이의 자서전 같은 책이지만, 검찰과 정치권력의 관계, 검찰 내부의 사정, 검찰과 선거, 정치권과 조직폭력배, 검사를 모략하는 조폭, 검찰과 언론의 관계 등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검찰의 특권의식과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히고 있으며, 특별검사 논란이 왜 계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따져보고 있다. 600쪽, 2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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