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새 論새評] 보수·진보 모두 각성해야 한다

입력 2015-12-24 01:00:05

1957년생. 중졸 검정고시. 서울공고·경희대 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1957년생. 중졸 검정고시. 서울공고·경희대 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양극화에 무능한 韓·美 정치 닮은꼴

경제개혁은커녕 선거에 쏠린 여·야

특정 지역 의존하는 양당구조 깨져야

유권자들 투표로 따끔한 맛 보여줘야

한창 진행 중인 미국 대선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이다. 처음 트럼프의 기행을 웃으며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지고 있다. 막말을 쏟아내며 공화당에 여론의 관심을 모으는 광대 역할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될까 봐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주연 중의 하나다. 샌더스 의원은 정치 입문 초기부터 일관되게 사회주의적 관점과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정치인에게 사회주의자라는 말은 큰 약점이다. 우리의 '종북세력'보다는 약하지만 그와 유사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 정책을 공격하는 공화당의 강력한 무기가 '오바마는 사회주의자'라는 구호였다.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금기시되던 언사를 거침없이 배설하면서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발언의 76%가 거짓말이라는 통계와 함께 올해의 거짓말 대상까지 받았다. 열기가 식기는 했지만 샌더스의 발언은 다른 차원에서 미국 주류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1%에게 있는 권력을 빼앗아 99%에게 돌려줄 때가 됐다."

트럼프나 샌더스 모두 과거 같으면 '씨도 안 먹힐' 후보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극단적인 양극화에 국민들이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개혁에 무기력한 정치권에 염증을 내는 것이기도 하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싸우기만 할 뿐 무능한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다.

경제의 극단적인 양극화, 무기력한 정치권, 싸움에 능하고 문제 해결에 무능한 정치. 바로 우리의 문제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경로에서 위기신호가 오고 있다.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이미 구문이다. 뛰어난 젊은이들이 오갈 데가 없어 공무원 시험으로만 몰리고 있다. 기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퇴직자를 쏟아내고 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희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돈벌이가 된다면 재촉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채용을 늘리는 게 기업이다. 경제체질 개선과 구조개혁이 시급하지만 정치권은 관련 법안에 별 관심이 없다.

여야 모두 선거구 획정이나 공천제도 등 제 밥그릇 챙기기에 일차적 관심이 쏠려 있다. 야당은 탈당이나 잔류 중 어느 줄에 서야 하는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재촉해도 마이동풍이다. 대통령의 말만 꼬투리 잡으며 정작 문제는 나 몰라라 이다.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여당이 제출한 대로 통과시키라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과 절충을 거쳐 결론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여론의 재촉에 밀려 여야가 마지 못해 상임위를 열었지만 상대에 대한 비난과 말꼬리 잡기로 파행을 거듭할 뿐이다.

우리나라 양당 구조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만 의지하는 정치 구도는 깨져야 한다. 의미 있는 제3당의 출현이 가능한 선거제도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의 신당이 그런 담합 정치를 깨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보수 진보 양측이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의 선택이다. 어느 진영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는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 무슨 짓을 해도 대구경북(TK)은 우리를 찍을 것이라는 여당이나, 젊은이는 모두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야당이나 피장파장이다. 대통령의 후광을 이용하여 자신의 미래만 챙기려는 호가호위 세력도 냉정하게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나 샌더스가 아무리 돌풍을 일으켜도 미국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된 사회 체제가 너무 강고하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결정하는(Money Talks) 정치 시스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일찍부터 정치에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치를 잘못할 경우 보수든 진보든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수 있음을 이참에 유권자들이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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