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남편·빚더미 오른 딸 '고된 세상살이'
도심의 한 낡은 상가 건물에서 셋방살이하는 김혜숙(가명'67) 할머니는 평생 손에서 일을 놓아본 적이 없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힘든 장사를 도맡으면서도 남편의 병시중을 묵묵히 들었다. 최근에는 형편이 어려워져 친정으로 들어온 딸과 손녀의 뒷감당도 모두 할머니의 몫이 됐다. 평생 가장으로 살면서 힘든 내색 한 번 한 적 없던 할머니는 최근 삶이 점점 힘에 부친다. 남편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불어나는 치료비를 더는 감당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평생 가장 노릇
10대 후반에 시집와 어린 나이에 결혼 생활을 시작한 할머니는 한평생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지금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 부부는 전국 곳곳을 돌며 생필품, 주방용품을 팔거나 남의 집 농사, 식당일을 거들어주며 돈을 벌었다. 하루 일당으로 며칠을 살고, 또 일을 나가야 하는 고된 생활이 반복됐지만 부부는 힘든 줄 몰랐다. 풍족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노력으로 불어나는 살림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자식들을 보면 그보다 큰 보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 잡자 부부는 지역 곳곳의 공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식당을 운영했다. 음식 솜씨 하나는 자신 있었던 할머니가 주방일을 도맡았고, 할아버지는 배달, 뒷정리를 했다.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그때쯤이었다. 남편은 어느 날부터 조금만 걸어도 다리와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을 호소했다. 몇 년이 지나자 식당일을 돕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졌고, 집에서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증상이 나타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병원을 찾았는데 결국 '척추관협착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남편은 식당일을 도울 수 없었다. 집안일, 목욕 등 일상생활조차 할머니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근육통이 심한 것인 줄 알고 병원에 안 가고 몇 년을 파스만 사다 붙인 게 병을 키웠던 것 같아요. 몸이 약했던 남편은 병세가 빠른 속도로 진행돼 전립선비대증으로 인한 배뇨 장애까지 겪었어요. 그때부터 생활비, 병원비, 딸의 학비 모두 제 몫이었어요."
그 무렵 부부가 하던 식당도 형편이 기울기 시작했다. 지역 건설 경기가 악화되면서 현장 식당들의 벌이가 예전 같지 않았다. 공사 중이던 업체가 부도가 나 사전에 약속했던 밥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결국 부부는 10년 넘게 함께 일궜던 식당을 정리했고, 할머니는 또다시 일감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남편의 암 발병으로 또 좌절
할머니는 최근 걱정거리가 늘었다. 딸 내외가 운영하던 떡집이 장사가 안돼 폐업하고 빚더미에 오르면서 세 식구가 할머니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다 쳐도 자식만은 잘살았으면 했는데 상심이 커요. 딸 내외가 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버리지 않고 갖고 온 각종 가게 장비, 가전제품을 보면 가슴이 무너져내려요."
그러다 얼마 전 부부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다. 배뇨 장애를 앓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던 남편이 석 달 전 방광암 2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부부는 20년을 넘게 살아온 전셋집을 월세로 바꿔 전세 보증금을 수술비에 보탰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동네 이웃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수술비 1천200만원을 가까스로 마련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남편은 수술 후 항암치료를 추가로 받아야 하지만 부부는 또다시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치료를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현재 부부에게 나오는 한 달 기초연금은 30만원이 조금 넘는 상황. 근로능력이 있는 자녀가 있어 이 외에 치료비, 생활비를 지원받을 방법이 없다. 할머니가 농번기, 김장철에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다닌다 해도 추가로 벌 수 있는 돈은 많아야 30만원에 불과하다.
"한평생 열심히 살아왔는데 세상 어느 곳에도 기댈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남편이라도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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