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대담]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입력 2015-12-21 01:00:03

"노동개혁만 되면 청년실업 해결? 朴 정부 문제 너무 쉽게 봐"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이상돈 교수는 보수 성향의 법학자이다. 열린 보수, 합리적 보수의 올바른 모습을 찾고 이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도덕과 책임, 환경과 보전, 공동체 정신 등이 이 교수가 생각하는 가치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의 보수 세력은 목청을 높이지만 보수 가치와 늘 먼 거리에 있다. 법학자이면서도 이 교수가 현실 참여적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2013년 초 명예퇴직을 했지만 살아있는 말과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이 교수의 선배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가 "저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정치를 바라보는 이 교수의 눈은 매섭다. 크게 방향을 정하지만 현안을 풀어가는 세밀함은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한다. 야당 전유물이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보수 가치로 전환시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연승으로 이끈 대목에서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난파 직전에 몰린 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 비대위원장직을 제안받은 것은 이 교수의 합리성이 야당에도 매우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보수정치가 기득권 보호세력을 자청하고, 진보정치가 소수 세력의 대변자로 전락한 현실을 개탄하고 있는 이상돈 교수를 매일신문 서울지사에서 만났다.

김병준: 쓰고 계신 매일신문 칼럼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더라. 얼마나 되셨나?

이상돈: 조간 전환되면서 시작했다. 이제 1년 거의 다 되었다. 2주일에 한 번이니까 20여 편을 썼다. 대구경북이 좀 더 역동적으로 바뀌길 기대하고 있다.

김병준: 정치 이야기, 특히 야당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한다. 안철수 의원은 지금 이대로는 못 이긴다며 탈당을 했다. 새로운 정치집단을 만들어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들이 이기면 뭐가 달라지나?

이상돈: 사회갈등과 국정 난맥이 심화되고 있고 대규모 국책사업의 부실이 드러나는 등 보수 정권의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고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결국 새누리당이 못할 것 같으니 자신들, 즉 야권이 해야 한다는 말 아니겠나.

김병준: 글쎄? 제대로 된 정책도 없고, 또 제 몸 하나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어딜 봐서 잘할 수 있다고 하겠나. 같은 맥락에서 여당은 또 왜 자신들이 이겨야 한다고 하나?

이상돈: 경제위기를 벗어나자면 노동개혁 등 성장정책을 가진 자신들, 즉 새누리당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겠나. 더욱이 안보를 생각할 때,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김병준: 이 또한 '글쎄'다. 경제를 살리는지 죽이는지, 또 누가 민주국가의 정체성과 근본을 흔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쪽 저쪽 모두 무슨 근거로 자신들은 잘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이상돈: 문제를 너무 쉽게 본다. 박근혜정부만 해도 그렇다. 이를테면 노동개혁만 되면 청년실업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가 해소되는 것처럼 말한다. 심지어 국회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긴급명령을 내리겠다는 태도다. 내용과 추진방식 모두 이해하기 힘들다. 해법은 오히려 여야 주장의 중간지대에서 찾아야 한다. 또 상대를 설득해가며 해야 한다.

김병준: 중간지대에서 찾는다?

이상돈: 세계화 등 변화가 깊숙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도식적인 보수, 진보의 경제사회 정책으로는 경제나 사회문제를 풀 수 없다. 예컨대 자유주의 보수 경제철학이나 정책도 잘 맞지 않고, 그렇다고 국가가 재정을 이용해서 고용을 창출하는 진보적 방식도 옳지 않다.

김병준: 결국 우리 정치권의 양쪽 세력 모두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말 아닌가?

이상돈: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2012년 공약을 통해 이를 벗어나려 했다. 새로운 길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으로 기대하기도 힘이 든다. 야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직된 진보 이념이나 거대 노조의 이해관계 등에 갇혀 있다. 어느 한 쪽이라도 변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김병준: 변하는 데도 능력이 필요하다.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상대와 지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도 있어야 변한다.

이상돈: 그런 게 부족하니 문제만 생기면 안팎으로 싸움만 한다. 이번 안철수 의원의 탈당도 그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김병준: 안철수 의원의 탈당? 정책노선 문제가 아니라 공천권과 당권을 둘러싼 싸움 아니었나?

이상돈: 그런 점도 있다. 하지만 야당 내 주류와 비주류의 시각 차이도 큰 원인이 되었다. 예컨대 FTA 문제에도 상당한 시각차가 있고,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폭력성이 드러나고 만 1차 민중총궐기에 대해서도 시각차가 크다.

김병준: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공천권을 두고 치고받고 하는 막장 드라마라 생각하고 있다.

이상돈: 단순히 그렇지는 않다.

김병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위 주류인 '친노'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던 주요 정책들을 부정하고 있다. 한미 FTA 문제가 그랬고,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그랬다. 또 지금 문제가 되는 서비스산업 육성 문제도 그렇다.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이었는데 반대 깃발을 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명처럼 여겼던 지방분권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변변한 법안 하나 내놓지 않고 있다.

이상돈: 그래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한명숙 전 총리로 대표되는 야당 지도부에 대해 "말을 바꾸는 세력에게 나랏일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꽤나 설득력 있는 발언이었다. 지금도 새정치연합의 주류 세력은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병준: 앞으로도 그럴 것 같나?

이상돈: 문재인 대표가 자신이 물러나는 것만 빼고 다 바꾸겠다고 한다. 당을 전면 개혁한다는 말이다. 한명숙 대표 체제 이래 고착화된 정책기조도 바꿀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거다. 두고 보자.

김병준: 못 바꾸면 '친노'라 하지 말아야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핵심적인 정책들을 부정하면서 '친노' 간판을 달아서 되겠나.

이상돈: 그렇게는 못한다. 지지세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여권 지지층에게 '친노'는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노 전 대통령을 매개로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지금 야당은 노 전 대통령에게서 버리면 안 되는 것은 버리고, 버렸어야 하는 것은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형국이다.

김병준: 결국 도식적 이념노선으로 돌아갔다는 말 아니냐?

이상돈: 핵심 지지세력의 눈치를 너무 보니 그렇다. 이런 입장이 결국 보수를 결집시키도록 했고,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공격받게 만들었다.

김병준: 그래서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가?

이상돈: 그렇다. 바로 이런 점에서 안철수 의원 등은 별도의 세력을 만들어 야권을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류 주도의 공천권 행사도 걱정이 되지만 이를 넘어 야권의 정책노선이나 정책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김병준: 주류 세력은 오픈프라이머리, 즉 상향식 개방형 경선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되면서 당이 좀 더 열리고, 그렇게 되면 당의 정책 방향도 다소 달라질 수 있지 않나?

이상돈: 심지어 비례대표까지 상향식으로 하겠다고 하는데 잡음이 많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열렬한 지지자나 조직화된 지지그룹들이 참여하는 경선이 될 것이다. '친노 세력'이라는 도식적 이념노선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기존의 정책노선이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당은 더 닫힌다.

김병준: 야당은 그렇다 치고 정부'여당은 어떠한가? 도식화된 보수정책 노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줄 수 있나?

이상돈: 어렵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눌렸던 이명박정부처럼 박근혜정부 역시 임기 시작과 함께 국정원 문제 등으로 방어적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정책도, 인사도 매우 방어적이다. 새로운 무엇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이를 위한 새로운 인물도 기용하지 못하고 있다.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김병준: 곧 임기 3년이 지난다. 지금 와서 정책 방향을 바꾸거나 새로운 무엇을 추진하기는 힘이 들 것이다.

이상돈: 아무것도 못하고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웃음)

김병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다행이라고?

이상돈: 이명박정부 때 4대강 사업하고 해외자원개발 한다고 엄청난 돈을 썼다. 그 후유증도 크다. 최소한 이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김병준: 그래도 최근에는 노동개혁 법안이나 기업 활력 제고 법안 등을 놓고 국회에 압박을 넣고 있다.

이상돈: 이것이라도 해야 한다는 초조감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긴급명령을 거론하는 등 리더십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국회선진화법에 위배되는 직권상정을 요구하기까지 했는데 잘 알다시피 국회선진화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대표로 있을 때 만든 법이다.

김병준: 그런가?

이상돈: 법 제정 때 정의화 의장은 이재오 의원과 함께 선진화법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다. 박근혜 당시 대표는 국민에게 약속한 사항이라며 통과를 밀어붙였다. 18대 국회의 의미 있는 업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법을 스스로 무시하면 안 된다. 국회선진화법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법 정신을 존중해서 소통과 대화를 하는 것이 맞다. "이게 옳다. 받아라. 안 받으면 긴급명령을 발동한다." 이런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병준: 정부는 그렇고, 그러면 여당인 새누리당은? 비전과 희망을 주고 있나?

이상돈: 대통령의 영향력 앞에 꼼짝을 못하고 있다. 희망을 가지기가 어렵다.

김병준: 정부'여당이 이렇게 못하는데도 야당은 그 반사이익조차 제대로 못 보고 있다. '자본주의 4.0'을 쓴 칼레츠키가 말하길 진보개혁 세력이 뚜렷한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사람들은 익숙한 곳, 즉 보수 쪽을 향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 정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상돈: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내년 4월 총선 투표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야권 지지자들, 특히 젊은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할 수 있다. 반면 여권 지지성향이 강한 나이 든 세대의 투표율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김병준: 확실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상돈: 인구학적으로 그렇다. 여당이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 박근혜 대통령한테 실망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야당이 변화하면 상당한 무당파 유권자와 부동층 유권자들을 담을 수 있다. 국민의 분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비전과 희망을 줘야 한다. 그런데 그걸 못하고 있다.

김병준: 이런 잘못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나?

이상돈: 두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 첫째는 공천제도이다. 결선투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나오고 싶은 사람들 다 나와서 그중 두 명을 최종후보로 선출한 뒤, 이들 둘을 놓고 결선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영남이나 호남지역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 된다. 말이 선거이지 실제로는 선거가 아니다. 시민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당 지도부에 의해 임명이 된다.

김병준: 또 하나는?

이상돈: 검찰개혁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다들 소통과 민주를 강조한다. 그런데 대통령만 되고 나면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 바탕에 검찰이 있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에서 가장 훌륭했던 것이 바로 검찰개혁이었다. 야당이 냈던 공약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뒤에는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

김병준: 검찰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나?

이상돈: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기가 수사하고 자기가 기소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게다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기소권 오'남용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런 검찰을 대통령이 손에 쥐고 있다.

김병준: 오늘 말씀, 감사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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