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문신인 이세재(1648~1706)는 1698년 경상도관찰사(감사)로 부임해 칠곡 가산산성 외성을 쌓느라 임기 뒤에도 머물다 1701년 다른 자리로 옮기며 대구감영을 떠난 인물이다. 그는 경상감사 때 두 사람을 죽였다. 범죄와 거짓말 죄 때문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한 장사꾼이 정혼(定婚) 후 출가 않은 사대부집 딸을 보고 음모를 꾸몄다. 딸이 잘 때 그 밑에 자신의 허리띠를 몰래 감춰달라고 유모에게 뇌물을 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집을 찾아가 "내 허리띠를 자리 밑에 빠뜨렸으니 돌려달라"고 했다. 놀란 주인의 호통에 쫓겨나자 관(官)에 고했다. 이 감사는 유모를 심문, 사실을 밝혀내고 둘을 사형에 처했다.
또 혼사가 막힌 처녀를 위해 약혼자에게 사정해 혼사 비용을 대주며 택일해 혼례를 올려줬다. 이익의 '성호사설' 중 '감사가민녀'(監司嫁民女) 내용이다. 이익은 글 끝에 "당시에 칭송이 자자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고구려 평강왕의 거짓말은 너무 잘 알려진 사례다. 어린 공주가 자주 울자 "네가 늘상 울어서…자라난 다음에는…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야 마땅하겠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공주 나이 16세에 고씨(高氏)에게 출가시키려 하자 공주는 단호했다.
"대왕께서는 늘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다' 하였는데 이제 와서…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도 식언(食言)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이시옵니다…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왕은 노했고 공주는 '바보 온달'과 결혼했다. 온달은 뒷날 공으로 당당한 사위가 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기록이다. 이 밖에도 거짓말에 얽힌 사연과 기록은 역사에 숱하다.
이처럼 거짓말에는 응징과 책임이 따랐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예외다. 숱한 식언과 거짓말은 특권 같다. 빈말과 빈 약속, 약속 파기, 거짓말이 난무해도 응징자도, 책임을 묻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국민과 철석같이 약속한 300명의 선량(選良)이 모인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손바닥 뒤집듯 뭉개지는 일이 빈발하는 까닭이다.
299명의 의원이 말에 책임지고 거짓말을 못하게 막아야 할 국회의장은 '내 탓'보다 '네 탓'하며 한술 더 뜬다. 청와대나 행정부 탓도 있다. 하지만 각종 법안의 입법 권한은 국회 몫이다. 제 역할 못하는 의원 통솔에 자신 없으면 그만둠이 마땅하다. 거짓말을 응징한 공주나 경상감사보다 못한 '무능 뻔뻔한' 여의도 국회의장을 괴롭게 지켜봐야 하는 우리 국민만 그저 불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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