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들어 지키고 싶었다 조선 마지막 산군, 大虎
#일제 아래 억압통치 한창이던 1925년
#조선 호랑이 잡기 위해 지리산 몰려들어
#대호에게서 대한독립군의 모습 오버랩
#최민식의 거친 얼굴은 우리 민족 상징
'신세계'(2013)의 박훈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그는 '신세계'를 통해 연출력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였다.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2010), 류승완의 '부당거래' 각본을 썼고, '혈투'(2011)로 감독 데뷔를 했다. 다섯 개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몰릴 대로 몰린 인물이 거친 충돌의 세계로 무섭게 돌진하며 비극의 한가운데 선다는 점이다. 남자와 남자들 간의 충돌과 복수, 때로는 이익에 따라 손을 잡았다 차갑게 배신하는 인물들은 비정한 현대사회의 폭력적 상징으로 깊은 잔상을 남긴다.
지리산 호랑이를 소재로 한 '대호'는 남자들의 영화를 만드는 박훈정의 영화세계에서도 특별하다. 민화와 민담 속 캐릭터로 친근한 호랑이를 한국인들은 친숙하게 여기고 사랑하지만, 호랑이를 소재로 활용한 한국 영화는 없었다. 이미 멸종하고 없는 한국 호랑이를 되살리는 기획이 쉽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이야기와 야생의 호랑이 이야기를 엮는 것은 여간한 작가적 역량이 아니면 구현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라이프 오브 파이'(2012)의 경우, 영화 속 호랑이가 인간의 잠재의식에 남아있는 야생성의 상징으로 활용되어, 이성과 무의식과의 충돌과 조화를 표현하는 기제로 사용됨으로써 동물 소재 영화의 혁신을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동물 소재 영화들은 대개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호'는 한국 호랑이를 되살려낸다는 거대한 기획에 대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동물 소재 영화에 대한 우려 또한 가지고 출발한다.
영화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인 천만덕(최민식)이 지리산 호랑이 대호와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는 1915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억압통치가 한창인 1925년으로 시간이 흐르고, 대호와 만덕이 맺은 인연과 운명적 사건이 비극처럼 펼쳐지며 영화의 서사 속으로 관객을 유인한다.
1925년, 만덕은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은 채 지리산의 오두막에서 늦둥이 아들 석(성유빈)과 단둘이 살아간다. 석은 한때 최고의 포수였지만 지금은 사냥을 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다. 한편, 마을은 지리산의 산군으로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자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인 대호를 찾아 몰려든 일본군 때문에 술렁이고, 도포수 구경(정만식)은 대호 사냥에 열을 올린다. 조선 최고의 전리품인 호랑이 가죽에 매혹된 일본 고관 마에노조(오스기 렌)는 귀국 전에 대호를 손에 넣기 위해 일본군과 조선 포수대를 다그치고 구경과 일본군 장교 류(정석원)는 자취조차 쉽게 드러내지 않는 대호를 잡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명포수 만덕을 영입하고자 한다.
대호와 만덕은 똑 닮아있다. 거친 자연과 어우러져 생활하며 아들을 정성껏 키우지만,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자신의 터전을 유린당한다. 강하지만 슬픈 이 두 수컷은 묘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나누며 함께 운명을 건다. 대호는 건장하고 아름다운 신체 때문에 그를 잔인하게 포획하려는 일본군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놓이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다.
지리산 호랑이 대호는 한국 역사 속 여러 가지 사건들의 상징으로 중층적으로 다가온다. 산으로 숨어든 동학농민군이나 무장투쟁을 준비하던 대한독립군을 일본 토벌대들이 때려잡던 실제 역사가 오버랩된다. 근성을 가진 대호가 쉽게 일본군에게 잡힐 리가 없으며, 용맹한 그가 일본군과 일대 혈전을 벌이는 장면, 즉 신체가 절단되고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잔인하지만 속 시원한 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명랑'에 이어 '대호'까지 배우 최민식의 거친 얼굴은 우리 민족의 상징 코드로 활용된다. 운명과 숭고의 짙은 무게를 걸머진 좋은 배우다. 그리고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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