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 역사에 구석기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고학적 발굴, 실증사관 같은 현대적 연구방법이 본격화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일제의 식민사관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한반도의 구석기시대 존재를 인정해버리면 북방-한반도-일본에 이르는 문명 전파 경로를 인정해야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그들의 국가적 자부심인 천황사상이나 선민(選民)의식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고 동북아권에서 수동적, 하위(下位) 문명으로서의 역사를 시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1978년 한탄강에서 물놀이를 하던 미군 그렉 보웬(Bowen G.)이 우연히 발견한 4점의 석기는 한반도의 역사를 30만 년 이상 소급시키고 세계 고고학회에 한반도에서 구석기의 존재를 알리는 획기적 유물이었다. 전곡리에서 채집된 '아슐리안'(양면 가공석기)은 구석기 문명 범위를 아프리카, 유럽으로 한정한 모비우스의 학설을 일거에 깨버렸다. 이후로 전국 약 200여 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면서 한반도 전체가 구석기 문화권이었음이 증명됐다.
대구에서도 2006년 월성동에서 1만여 년 전 유적이 발굴되면서 지역에서 최초로 구석기시대 존재를 알렸다. 여기서 발굴된 좀돌날, 흑요석은 고대 한'중'일의 문화 전파 경로를 파악하는데 힌트를 제공했다.
얼마 전 예천 삼강주막 근처에서 구석기시대 유물 160여 점이 발굴됐다. 내성천 인근 하안 단구에서 발견된 유적지에선 8만 년 전 전기(前期) 구석기부터 4만 년 전 중기구석기까지 다양한 문화층이 확인됐다. 영남지역에서 전기 구석기 유적의 존재를 처음 알린 상주 신상리 유적에 이은 두 번째 발굴이어서 그 의미 또한 크다. 대구 달서구 월성동 후기 구석기 유적에 이어 전기, 중기 구석기 유적이 모두 확인됨으로써 대구경북 지역에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구석기시대의 퍼즐이 대략 맞춰지게 된 것이다.
발굴에 참여한 차순철 동국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삼강리 유적은 전기와 중기유적을 아우르고 있어 한국 구석기시대 지표 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이번 발굴에서 화산암재 석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예천은 화산암이 나오는 지역이 아니라서 북쪽에서 물길을 타고 내려온 외부인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했다.
삼강리의 내성천은 남한강 수계와도 연결돼 한강을 통한 북방계 문화의 유입, 전파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이론에 근거한다면 대구에서 발견된 좀돌날 미스터리도 쉽게 풀린다. 좀돌날은 시베리아, 북방계를 대표하는 유물이고 이 석기가 일본의 규슈나 후쿠오카 등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강 수계를 통해 대구경북으로 전해진 문화가 낙동강을 거쳐 기타큐슈 지역으로 건너간 것이다.
조선시대 내륙 수운의 중심이자 숙사가 있었던 예천 삼강리 주막, 어쩌면 그 첫 손님은 20만 년 전 북방민족의 노꾼들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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