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는 김장 김치 별과 1박2일 시상식 동화 세상서 살아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1박 2일 시상식. 온 동네 사람들이 마련한 20여 가지 선물에다 별빛과 꽃향기가 축하해 주는 멋진 시상식. 이 낭만적인 시상식 때문에 상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생겨날 만큼,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만드는 동화작가 배익천(65'열린아동문학 편집주간) 씨. 그는 1974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40년간 200여 편의 동화를 썼다. 그리고 1986년 한국아동문학상을 시작으로 가장 권위 있는 소천아동문학상(제38회)을 수상하는 등 유명하다는 아동문학상을 모두 휩쓸었다. 또 든든한 후원자인 홍종관(66'부산 광안리 방파제 횟집 사장)'박미숙 씨 부부의 도움으로 경남 고성의 산을 사들여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가꾸고, 아동문학의 샘이 멈추지 않도록 하고 있다. 동화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그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 그날 그는 김장 담그기에 한창이었다.
-김장을 아주 많이 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계간지 '열린아동문학' 겨울호의 원고료가 김장 김치다. 이 김치를 보내면 작가들이 정말 좋아한다. 원로 동화작가에게도 김치를 보내고 있다. 행복을 나누는 김치여서 아무리 많이 담가도 힘들지 않다.
-원고료가 김치라니 재미있다.
▶열린아동문학의 원고료는 언제나 현금이 아닌 현물이다. 자연히 계절에 따라 원고료가 달라진다. 감 철이 되면 청도 곶감과 감말랭이가 원고료가 되고 미역 청어 멸치 된장 고추장 참기름 등 다양하다. 특히 겨울호에는 김장 김치를 보내는 것이 전통이다.
-열린아동문학은 어떤 잡지인가.
▶아동문학가 고 유경환(1936~2007) 선생님이 1998년 창간한 권위 있는 잡지다. 창간인이 2007년 타계하면서 내가 발행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유지를 남겼다. 선배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나 고민이 많았다. 사실 잡지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만든다는 것이 어렵다.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하자 방파제 횟집의 홍 사장이 선뜻 제작비 전부를 지원하겠다고 해서 이어지고 있는 잡지다.
-이 잡지의 시상식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시상식'이라는 소문이 나 있다.
▶1박 2일로 진행된다. '시상식 때문에 상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상식이 열리는 6월이면 전국 아동문학인 150명, 마을주민, 그리고 달과 별이 함께 축하해 주는 시상식을 마련하고 있다. 그야말로 동네잔치다. 이틀 동안 진행되는데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보낸다.
-축사도 없다고 들었다.
▶발행인 축사 같은 순서는 아예 없다. 발행인인 홍 사장은 오히려 일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뒷바라지하고, 부인 박 씨는 밥과 음식을 하느라 바쁘다. 시상식은 오로지 주인공인 수상자를 빛내는 데 집중돼 있다. 그리고 수상 선물도 아주 푸짐하다.
-수상 선물도 있나?
▶수상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선물이 많아 트럭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웃음) 전국에서 보내온 선물이 많기 때문이다. 시상식이 열리는 경남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방화골 주민들이 정성스레 키운 쌀과 마늘, 고성특산물인 파프리카와 방울 토마토, 청도구시장참기름집에서 내놓은 참기름 세트, 옻칠도마, 허리건강매트, 이불, 음반 등 20가지가 넘는다. 승용차에 실을 수 없는 양이다.
-멋진 순서가 하나 더 있다고 들었다.
▶수상 작품을 가족이나 친구들이 낭송하는 것이다. 올해 동시 낭송은 수상자의 아내가 맡았고 동화 낭송은 수상자의 아버지가 하셨다. 생각해봐라. 자신의 작품을 아내가 혹은 아버지가 낭송한다면 어떤 느낌을 주겠는가. 말 그대로 감동이다. 수상자들은 '동시동화나무의 숲' 진짜 주인공이 된다. 별과 달까지 축복해 준다. 동화 같은 시상식이다.
-누가 아이디어를 낸 것인가.
▶홍 씨 부부의 아이디어다. 시상식에 가보면 수상자가 들러리인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 많다. 여기는 오로지 수상자가 주인공이다. 수상자를 위해 음식도 직접 마련해 잔치를 열어 준다. 후원자인 홍 사장의 부인 박 씨가 모든 음식을 준비한다.
-후원자의 힘이 대단한 것 같다.
▶아동문학인들이 머리와 손으로 작품을 쓴다면, 후원자인 홍 사장은 온몸으로 더 아름다운 작품을 쓰는 사람이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면서도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가꾸기 위해 산을 구입해 주었고, 열린아동문학지의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아동문학상 상금은 물론 부인과 더불어 멋진 시상식도 직접 만들어 주고 있다. 작가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다. 이들 부부가 없었다면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이다.
-'동시동화나무의 숲'은 어떻게 시작됐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990년 은퇴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시골집을 찾던 중 마음에 드는 맑고 깨끗한 마을을 찾았다. 경남 고성군 대가면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지내면서 근처에 있는 숲이 정말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했다. 탐이 날 만큼…. 그런데 그 숲이 거짓말처럼 매물로 나왔다. 이 숲을 '동시동화나무의 숲'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자 홍 사장 부부가 2006년 5만2천800㎡(1만6천 평)를 흔쾌히 구입해서 숲이 탄생한 것이다.
-'동시동화나무의 숲'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작가의 나무가 있고 아동문학관도 있어 아동문학인이 글을 쓸 수 있게 빌려주고 있다. 요즈음은 어린이와 학부모의 현장 학습 발길도 늘어나 숲에서 아이들이 글을 쓰고 마음껏 뛰어놀고 있다.
-작가의 나무는 무엇인가.
▶일 년에 20명의 작가를 선정해 작가가 좋아하는 나무 밑에 돌을 놓고 작가의 이름과 간단한 약력을 적어두는 것이다. 지금은 작가의 나무가 140여 그루 있지만 50년, 100년이 지나면 산에 작가의 나무가 수없이 많아질 것이다. 그런 날을 꿈꾸고 있다.
-산을 가꾸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주말마다 홍 사장 부부와 함께 와서 잡초를 뽑고 나무를 가꾸었다. 10년이 되어 간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이면 숲으로 들어가서 손질하고 있다. 그동안 나무도 심고 꽃도 가꾸고 자동차 길도 내고 오솔길도 만들었다. 땀 흘리며 숲을 가꾸면서 나날이 어릴 적 심성을 찾아가고 있다.
-숲에는 동화 같은 '글샘'이 있다고 들었다.
▶옛날에 있던 샘을 파서 글이 샘솟는 '글샘'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곳에서 물을 마시면 글감이 마구마구 쏟아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물을 마실 때 특별한 의식이 있다. 오른손을 머리에 얹고 왼손으로 물을 퍼서 마시고 난 후 '아쭈구리'라고 말해야 한다.
-왜 '아쭈구리'인가.
▶친한 동화작가 한 분이 계셨는데 그가 아끼던 개의 이름이 '아쭈구리'였다. 그 개가 죽자 모두가 오랫동안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해서 이런 의식을 만들었다. 어른들이 머리에 손을 얹고 아쭈구리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웃음이 절로 나지 않는가. 그런데도 모두들 글샘 앞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이 동화와 동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모두가 순수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동시나 동화라면 어린이들만 읽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화는 어린이만 읽는 게 아니라 어른들도 읽어야 한다. 동화는 가장 간명하고 심플한 우리들의 잃어버린 신화다. 심성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순수와 자연이 있는 곳이다. 동화는 가장 자연하고 가까운 문학이다.
-동화를 많이 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억지로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읽기만 해도 천천히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 깔깔거리며 잘 읽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 마음속에서 함께 자라나서 그 아이의 삶에 천천히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좋은 동화다. 당장 많이 팔려서 작가에게 부귀영화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50년, 100년을 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커가는 동화가 제대로 된 동화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씨앗이 되고 자연이 되는 동화가 좋은 동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는 다른 문학에 비해 덜 조명받고 있다.
▶요즘 젊고 재능 있는 동화인들이 많이 나와서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걱정이다. 지금 우리 동화는 혼란기에 빠져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좋은 동화인지 깊은 고민이 옅어지고 있다. 단순하게 아이들의 상상만을 쓰는 것, 지나치게 판타지에만 매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동화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노래방에 가면 동요를 부르나.
▶언제나 노래의 끝은 동요다. 노래를 자주 부르지는 않지만 불렀다 하면 '나뭇잎배' '과꽃' '겨울나무' '꽃밭에서' 같은 동요를 부른다. 마음이 잔잔하고 편해진다.
-아직도 육필원고를 고집하고 있다.
▶원고지에 써야 글이 되고 글이 나온다. 나는 문자메시지도 보낼 줄 모른다. 물론 메일 주소도 없다. 전화기도 폴더다. 옛날 것을 불편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꿈이 있다면.
▶'동시동화나무의 숲'에 동시도서관, 동화도서관과 같은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욕심을 내면 아이들이 뒹굴며 책을 읽는 좀 큰 도서관도 마련하고 싶다. 일본 미야자키의 '그림책 마을' 같은 장소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얼굴
배익천
하늘 한 가운데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고
아버지 하고 불러보면 아버지 얼굴이 되고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어머니 얼굴이 된다
하늘 한 가운데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고
아버지 어머니 낮은 소리로 불러보면
동그라미 가득 눈물이다
하늘하나 가득 눈물이다
하연 빨래 뒤에서 소리죽여 울고 있는
어머니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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