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Y의 게임

입력 2015-12-12 02:00:01

경북대 고고인류학과­.경북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경북대 고고인류학과­.경북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여느 해처럼 올해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세상을 하직했다.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를 비롯, CJ그룹 이맹희 명예회장, 개그맨 남성남, 유수호 전 의원 등이 차례로 부고를 전했다.

해외에서는 '양철북'으로 유명한 문호 귄터 그라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 공포 영화의 거장 웨스 크레이븐 등이 타계 소식을 전해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던 명포수 요기 베라도 결국 생을 끝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수학자 존 내시도 불의의 교통사고로 영면에 들고 말았다. 그는 생전에 '게임이론'에 공헌한 바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 이론을 살짝 들여다봄으로써 잠시 추모의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하자.

자, A라는 나라에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두 남자 Y와 D가 있다. 당시 A국의 T 대통령은 '중간평가'를 해서 지지가 낮으면 하야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바 있었다. 약속한 중간평가의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고, 우직한 Y는 먼저 뛰쳐나가 대통령 T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국민들에게 역설하기 시작한다. 만약 D마저 함께 뛰쳐나와 국민들에게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면, 당시 사상 최소의 여당을 이끌던 T는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평생 경쟁자이자 동지였던 D가 머뭇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Y는 다급해져서 직접 전화까지 거는 등 회유에 나서지만 D는 어쩐지 끝까지 시큰둥했다. T는 결국 사회 혼란을 핑계로 약속했던 중간평가를 취소하기에 이른다. D는 T에 화답했다. 자신의 생각도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닭 쫓던 개꼴이 된 Y는 연이어 터진 '동해시 후보 매수 사건'까지 겹쳐지며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된다. 도대체 Y는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그렇다. 그는 소위 '내시 균형'을 몰랐던 것이다.

내시 균형이란 이런 것이다. 둘 다 서로를 배신하지 않으면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배신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배신하지 않으면 배신하지 않은 사람이 독박을 쓰게 된다. 만약 둘 다 배신을 하게 되면 그럭저럭 평타는 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신을 하게 된다. 상대가 배신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양방의 합리적 배신이 바로 '내시 균형'이다. 이 상황은 다른 말로 '죄수의 딜레마'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딜레마인 이유는 그 '내시 균형'의 결과가 절대로 최선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신뢰의 부족이 사실은 손실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 중간평가 사태에서 비정한 '게임이론'을 배운 Y는 이제 더 이상 명분을 추구하는 협객이 아니었다. 그와 D가 서로를 신뢰했다면 가장 좋은 상황인 '민주적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었음에도 이제 신뢰를 잃어버린 그는 '내시 균형'이라는 카드,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D의 독박'을 불러오는 위험한 선택을 해 버린다. 그 선택은 그를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그를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전 대통령으로 추락시켰다.

IMF가 온전히 그의 책임이 아니듯, 3당 합당도 전적으로 그의 야욕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게임은 이제 끝났고, 양복발이 유난히 잘 받던 그 쾌남을 우리는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추억할 것이다. Y도, 내내 분열증에 시달리던 존 내시도 2015년, 먼저 떠난 D와 함께 영원한 '균형 상태'로 돌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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