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히트 브랜드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번에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들을 스타 반열에 올리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응답하라 1988'에서도 류준열, 안재홍 등 저예산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던 인물들이 데뷔해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여주인공 성덕선 역을 맡은 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 역시 연기자로서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며 '대세'로 인정받고 있다. 영화계에서 만년 조연으로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류혜영도 혜리의 언니 성보라 역을 따내며 얼굴을 확실히 알렸다.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성장 가능성을 점치기 힘들었던 연예인을 캐스팅해 스타로 만드는 건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매특허다. 스타 캐스팅에 열을 올리기보다 잠재력을 가진 인물을 발굴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콘텐츠 자체에 자신감이 있다는 말이다.
혜리-류준열-류혜영-박보검-이동휘 등 출연자 전원 스타덤
제아무리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도 출연자들이 하나하나 주목받는 케이스는 드물다. 출연자들이 각각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거나 제작진이 개별 캐릭터에 힘을 주기 위해 신경을 쏟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출연자 개인의 역량과 드라마 안에서 환경적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 오히려 출연자 간의 지나친 경쟁은 전체적인 흐름을 깨트려 작품 전체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드라마 한 편으로 출연자들을 스타로 만드는 게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응답하라' 시리즈는 시즌1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번 뉴페이스를 찾아내 동반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상대적으로 더 집중하는 캐릭터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거의 모든 인물에 골고루 주목하며 성격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연기자 개인의 인지도까지 높아지도록 만들고 있다. 등장인물의 인간적 매력을 끄집어내는 데 집중해 호감도를 높이니, 어디 하나 사랑받지 못하는 캐릭터가 없다. 출연자들의 '캐릭터 만들기'에 도가 튼 예능작가 이우정과 예능PD 신원호가 자신들의 장점을 드라마에 적극 반영해 얻어낸 결과다.
시즌1인 '응답하라 1997' 론칭 당시의 일이다. 여주인공에 걸그룹 에이핑크의 보컬 정은지가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스타 캐스팅이 안 돼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그럴 만한 것이 당시 에이핑크의 인기가 지금처럼 높은 편도 아니었고 정은지는 팀 내에서도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멤버였다. 단 한 번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던 인물이 16부작 드라마의 여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 역시 우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남자 주인공으로 들어간 서인국 역시 외부에서 봤을 땐 선뜻 납득하기 힘들었다. 이 드라마에 앞서 '사랑비'의 조연으로 '의외의 연기력'을 인정받은 직후이긴 하다. 하지만 달랑 조연 한 번 경험하고 바로 주연을 맡았으니 '스타 캐스팅이 힘들어 이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듣는 게 당연했다.
이 시기만 해도 '응답하라' 시리즈는 예능형 드라마라는 특징 외 크게 주목받을 만한 요소가 없었다. 설정에 대해서도 '추억팔이'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어 스타 캐스팅이 수월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결국엔 새 인물을 찾아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시도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연기 초짜' 정은지는 10여 년은 트레이닝을 받은 것처럼 능청스럽게 캐릭터를 소화해 단번에 주연급으로 떠올랐다. 서인국 역시 처음 주연이 됐는데도 발군의 연기력으로 몰입도를 높여 호평받았다. 그 외 주변 캐릭터를 연기한 신소율이나 호야 등의 연기자들도 완성도 높은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드라마의 상승세에 톡톡히 한몫을 해냈다. '스타 캐스팅이 어려워서'라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새 인물 찾기'가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줘 드라마의 특징을 살려내는 요소가 됐다.
정우-손호준 등 '뜨지 못한 연기자들'까지 단번에 스타로…
시즌2격이었던 '응답하라 1994'는 전편보다 더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슬럼프의 연속으로 정체기에 빠져 있던 고아라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게 했으며, '쓰레기' 역의 정우 및 그의 연적으로 등장한 유연석과 '해태'를 연기한 손호준 등 영화와 드라마계에서 주변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그쳤던 연기자들을 스타로 부각시켰다. 걸그룹 타이니지 멤버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도희와 아이돌그룹 B1A4의 바로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인지도를 탄탄하게 쌓았다.
특히 눈길을 끈 캐스팅은 김성균이었다. 제작진은 30대 중반의 영화배우 김성균을 '노안의 대학 신입생' 삼천포 역으로 출연시켜 안방극장에서 사랑받는 연기자로 만들어놨다. 당시 김성균은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처음 제작진으로부터 대학 신입생 역을 맡아달라는 말을 듣고 '장난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심지어 나를 놀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스스로도 이 캐스팅 제안에 의구심을 품었다고 말했다. '잘 안 풀리는 연기자'를 모으거나 기상천외한 설정까지 가미한 실험적인 캐스팅인데, 결국 이 시도가 '대박'을 터트렸다. 이 드라마 이후 정우와 손호준이 출연했던 2009년도 개봉영화 '바람'이 다시 화제가 되고, 유연석은 연이어 세 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등 데뷔 후 첫 전성기를 맞았다. 정우와 김성균은 각종 CF를 휩쓸며 광고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두 차례에 걸쳐 '새 인물 찾기'가 성공을 거두자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시즌3 캐스팅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이 시작됐다. '응답하라' 시리즈만큼 단시간에 주목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콘텐츠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인지도가 없더라도 연기력을 갖추고 대중에 어필할 만한 매력요소까지 가지고 있을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바꿔 말하면, '응답하라' 시리즈에 캐스팅된 연기자는 그만큼 성장할 가능성을 다분히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현재 전체 방영분량의 절반을 넘긴 '응답하라 1988'도 출연 중인 연기자들을 주목받는 인물로 만들고 있다. 객관적으로 봐서 그렇게 잘생긴 외모가 아닌 류준열은 시크하고 남자다운 극 중 캐릭터의 성격에 힘입어 요즘 여성들의 '워너비 남'이 됐다. 소위 '못생긴 애들 중에 제일 잘생긴 애'로 불리며 남성들 사이에서도 '꽤 괜찮은 놈'이라 불리고 있다. 애초 잘생긴 외모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추고 있던 박보검은 이번 드라마로 아예 상위권 스타로 발돋움할 분위기다. 말수가 적고 순진한 천재 소년 바둑기사 택이를 연기하며 드라마 속에서 혜리와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캐스팅 과정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았던 여자 주연 혜리는 '기대 이상의 연기력'이란 호평 속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걸그룹 활동 시기와 달리 화장기 없이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잔뜩 망가지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풋풋하고 귀여운 느낌을 자아내며 향후에도 성공적으로 연기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인물로 분류되고 있다. 아직 드라마가 방영 중인 상태지만 벌써부터 각종 CF에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끈다. 혜리와 마찬가지로 이미 이름을 알린 상태에서 캐스팅된 고경표 역시 이번 드라마로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다. 주로 영화에서 감초 캐릭터를 도맡았던 이동휘도 도롱뇽이란 별명을 가진 동룡 캐릭터를 맡아 호감도를 높이고 있다. 전체 방송 분량의 절반에 이를 때까지 동룡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아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동룡이 에피소드를 보여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을 정도다. 그 외 시즌1부터 꾸준히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성동일-이일화 커플과 시즌2에 이어 성인 캐릭터를 맡아 재출연한 김성균 등 기성 연기자들도 '응답하라 1988'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다시 한 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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