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어느새 뚝 떨어졌다. 아침의 햇살에는 따사로움이 거의 묻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싸늘한 날 아침 출근길 회사 부근을 지나는데, 지난해 신축해 영업을 시작한 한 대형 건물 앞에 평소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앞 대로에 늙수그레한 한 남성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만히 보니 남성의 뒤쪽, 대로 쪽으로 향하는 가로수들 사이에도 붉은색 글씨의 플래카드 몇 장이 하얗게 나부끼고 있다.
남자의 행색을 보니 공사판에서 입었을 카키색 낡은 야상 잠바에, 비슷하게 풀이 죽은 벙거지 모자를 헐겁게 쓰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 아이들의 아버지가 무슨 연유로 아침부터 일터 대신 빌딩 앞으로 '출근'해야 했을까.
남자의 손에 들린 커다란 피켓에는 '공사비 떼어먹는 ○○○의 양심은 죽었다'는 손글씨가 적혀 있다. 대답 없는 건물, 그 안의 누군가를 향해 침묵의 항의를 하고 있는 남자. 그에게 그 건물은 거대한 벽처럼 보이지 않을까. 자신이 땀 흘려 지은 그 건물이 이제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매일 이 거리를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10층이 넘는 이 대형 건물은 지난해인가 완공되어 지금은 입주 업체들이 속속 들어와서 영업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공사비를 받지 못한 업자가 있다니.
건축주는 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 건물에는 건축주가 아예 오지도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 남자는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상념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건축주의 입장도 남자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돈을 숨겨놓고 공사비를 주지 않았다면 도둑놈 심보라며 욕할 수밖에 없겠지만, 건축주도 지금 돈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도 여기저기서 대출받은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사무실 임대가 잘돼 돈이 돌기만 한다면 왜 공사비를 안 주었을까.
이렇게 시위를 하고 있는 이가 저 남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안타까운 모습이 어찌 이 거리만의 풍경일까. 대구경북의 올 임금 체불이 최근 5년 이래 최고치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지 않았던가. 1만5천 명 이상이 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하고. 그래서 더 안타깝다. 대구경북의 오늘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인 것 같아서….
한동안 아침마다 그 남자를 멀리서 지켜보며 출근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 공기가 쌀쌀해졌기에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자의 시위가 어떻게 끝맺음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빌딩 건축주와 원만하게 합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메아리 없는 외침에 지쳐 결국 포기하고 만 것일까.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모든 사람들이 좀 더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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