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새論새評] 정치인 안철수의 선택을 위하여

입력 2015-12-10 01:00:06

1957년생. 중졸 검정고시. 서울공고·경희대 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1957년생. 중졸 검정고시. 서울공고·경희대 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정치인 소명·천직 강조한 막스 베버

최장집 교수도 이를 기본 윤리로 꼽아

당 잔류냐 탈당이냐 고민 깊어질수록

직업·소명으로서의 정치 자문해 보길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사회과학 분야의 고전이다. 전문적 연구자든 아니든 정치의 본질에 관한 필독서이다. 그런데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우리말 번역본도 있다. 서로 다른 내용의 책이 아니다. 흔히 우리가 소명이라고 번역하는 영어 단어(calling)와 그에 해당하는 독일어(Beruf)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단어 모두 직업, 직무라는 뜻 외에 소명(사명), 천직이라는 풀이도 볼 수 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정치라는 직업은 소명(召命) 혹은 천직(天職) 의식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를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로 설명한다. 정치인은 우선 정치에 대한 내면적 믿음이 필요하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앙 또는 신념을 통해 스스로 가지게 된 소명 의식이어야 한다. 이처럼 내면화된 정치에 대한 소명 의식이야말로 정치인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신념 윤리라는 것이다. 정치인은 또한 아무리 힘들어도 그의 내면적 신념을 현실에서 이루어 내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책임 윤리는 정치인이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물음으로 바꿀 수도 있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야말로 정치인의 중요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결별했지만 최 교수는 한때 안철수 의원의 멘토였다. 그의 글을 통해 막스 베버를 읽으면서 지금 안 의원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런 얘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안 의원은 현재 한국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이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할지 극적으로 갈등을 봉합할지 일단 안 의원의 선택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안 의원이 재차 요구한 이른바 혁신전당대회에 대해 문재인 대표는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문 대표에게 공을 넘긴 안 의원에게는 이제 당 잔류냐, 탈당이냐의 선택만 남았다는 관측이다. 정치권의 이목이 온통 자신에게 쏠려 있는 걸 안 의원은 어떻게 여길까. 일부 논자의 생각처럼 주목받는 걸 즐기고 있을까. 아니면 한국 야당의 운명이 마치 자신의 행보에 달린 듯한 현실을 부담스러워할까.

안 의원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선택의 고비에 서 왔다. 서울시장, 대선 후보에 이어 신당 창당까지 안 의원은 줄곧 양보하는 길을 택해 왔다. 본인의 말처럼 그 결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 '강철수'라는 말을 한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할지 짐작하기 어렵다. 현재까지는 본인도 잘 모를 수 있다. 어떤 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더구나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고민이 클수록 해답을 찾으려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먼저 직업으로서의 정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자문해보길 권하는 것이다.

나는 왜 정치를 하려 하는가, 정치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안 의원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갑자기 정치에 불려나온 경우에 해당한다. 급조된 여론에 밀리듯이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처음부터 서울시장 혹은 대선 후보라는 어마어마한 판에 휩쓸렸다. 직업 정치인으로서 소명 의식이 내면화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다음은 그 소명 의식을 현실 속에서 이루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어떻게 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치적 역량 혹은 정치력이라 할 수도 있다. 소명 의식이 있다 해도 그 같은 능력이 없다면 직업으로서 정치는 적합하지 않다.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계속된 양보는 곧 역량 부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안 의원은 현재 칩거 중이라고 한다. 기왕 선택을 고민한다면 탈당이냐, 잔류냐보다 본질적 고민을 하면 어떨까 싶다. 막스 베버를 읽어보는 것도, 막스 베버에 관한 최장집 교수의 강연문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정치에 대한 소명 의식과 책임 의식이 있는지를 자문하고 그 결론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말마다 되풀이되는 '지긋지긋한' 부조리극을 그래서 본질적으로 정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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