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쫓겨나지 않을 권리

입력 2015-12-09 02:00:01

가수 싸이가 컴백했다. 싸이가 컴백을 준비하는 동안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순 없었지만, 우리는 종종 싸이에 관한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건물주 싸이와 그 건물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는 문화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에 관한 뉴스들이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공간은 2010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둥지를 틀었다. 예술가들에게 공간 전체를 작업실로 내어주고, 예술가들은 그 공간을 자신의 작업물로 채웠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는 손님이자, 다양한 예술 작품을 향유하는 관람객이 되는 것이다. 삭막한 동네에서 예술과 사람이 직접적이면서 편안하게 연결되는 그곳은 활기가 넘치는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공간의 편안하고 활기찬 분위기는 없다. 지난 몇 달간 강제집행의 두려움에 떨며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긴장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애초 계약 당시 15~20년간 임차를 해주겠다던 건물주는 계약 후 6개월 만에 건물을 팔아치웠다. 두 번째 건물주는 '재건축'을 명목으로 쫓아내려 했지만, 재건축은 이뤄지지 않았고, 세 번째 건물주인 싸이에게 건물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 사이 명도소송에서 싸이가 승소해 사실상 기존 임차인을 쫓아내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건물주는 임차인을 '합법적'으로 내쫓기 아주 쉽다. 9~12년씩 임차 기간을 보장해 주는 유럽의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임대차 관련법이 워낙 소유자, 즉 건물주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쫓아낼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그걸 이용해 쫓아내기가 수월하다면, 도대체 쫓겨나지 않을 권리는 어디에 있을까. 임차인이 그 공간에서 만들어 온 무형의 가치들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의 풍경을 보자. 수없이 많은 가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뀐다. 어제는 저 가게였다가, 오늘은 이 가게로 바뀐다. 그 건물이든, 그 동네든, 그 도시든, 역사가 쌓일 겨를이 없다. 살아 숨 쉬는 풍경으로의 전환에는 그 공간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관계와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들이 모여 그 공간의 가치를 만든다. '테이크아웃드로잉' 관계자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이곳을 방문하고, 체류하고 경험하는 분들에 의해 기억되는 유기체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사업장이겠고, 호기심 많은 방문자에게는 현대 미술을 목격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자 특색 있는 카페,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미술관, 지역 이웃에게는 산책길에 들러보면 재미난 동네 가게일 것입니다." 이 정도면 쫓겨나지 않을 권리가 적어도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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