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의족 스프린터의 몰락

입력 2015-12-05 01:00:03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의족 육상 스타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대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1년 9월 초였다. 당시 대구에선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는 장애인이었지만 장애인 올림픽이 아닌 이 대회에 남아공 육상 대표로 출전했다. 그리고 400m 준결승에서 대구 스타디움 마지막 8번 레인에 섰다.

"땅 ~." 총소리가 울리고 선수들의 질주가 시작됐다. 그 역시 전력 질주했다. 수천 명의 관중들이 숨을 죽였다. 그는 8명 중 7번째로 피니시 라인을 넘었다. 꼴찌에서 두 번째로 들어온 셈이다. 그러나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우승자가 아니었다. 관중들은 치타 플렉스 풋(치타 다리를 본떠 만든 탄소섬유 재질의 보철 다리)을 찬 채 결승선을 넘은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그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영웅이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2013년 2월 피스토리우스는 스타디움이 아닌 법정에 섰다. 밸런타인데이에 침대 옆 화장실에 들어가 있던 여자 친구 스틴캠프를 총으로 쏘아 죽인 혐의였다. 화장실 안 변기에 앉아 있던 스틴캠프는 네 발의 총을 맞고 그 자리서 숨졌다.

검찰은 그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피스토리우스는 화장실에서 인기척을 느꼈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에 총을 쏜 것이라며 단순 부주의라고 맞섰다. '고의적 살인이냐, 침입자를 의식한 단순 과실이냐'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지방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신 과실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는 1년간 복역한 후 지난 10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 또한 잠시였다. 대법원이 하급심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그에게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총을 네 발이나 쏘았다면 비록 '그 안에 있던 사람이 스틴캠프건, 침입자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며 '고의적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화장실 안에서는 총격을 받아도 달리 숨을 장소도 없었다'는 사실도 고려했다.

피스토리우스에 대한 판결은 '사람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채 홀로 탈출했던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게 우리 대법원이 살인죄를 인정한 것을 연상시킨다. 비록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대법원끼리는 서로 통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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