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울림] '더 많은 민주'가 대안이다

입력 2015-12-04 01:00:03

1956년 경기도 화성 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1956년 경기도 화성 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IS 파리 테러 후 흑백논리로 편 가르기

이분법적 증오는 또 다른 폭력 낳아

자신 의견 묵살될 때 극단적 수단 선택

모든 목소리 경청돼야 폭력 종식시켜

"통합과 화합".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말이 서글프게 들릴 정도로 세상은 어지럽게 돌아간다. 통합은커녕 갈등과 충돌이 계속되고, 화합보다는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반목이 오히려 일상이지 않은가? 역사상 최악의 테러집단으로 불리는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자행된 파리 테러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진 것처럼 보인다. 테러행위를 반대하는가 아니면 지지하는가,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가 아니면 지지하는가, 동성애 결혼을 반대하는가 아니면 지지하는가? 사람들은 이런 찬반의 흑백논리로 스스로를 편 가르며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편이 갈린 곳에는 증오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서로를 향한 예리한 증오의 창끝을 막아줄 완충지대는 존재하지 않으며, 극단으로 치닫는 분노의 목소리는 어떤 종류의 중간 목소리도 삼켜 버린다. "나는 테러리스트를 증오한다. 그러므로 테러리스트들이 몰래 숨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 이것으로 논리 끝이다. 그 어떤 반대 논거도 인정되지 않고, 그 어떤 '그렇지만'(but)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증오의 문화에서 IS 테러리스트들이 나쁘다고 해서 이슬람교도들을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들릴리 만무하다.

폭력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폭력은 또 다른 폭력만 낳을 뿐이다. 생명을 수단으로 삼아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테러리즘을 비난하고 배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중동 전문가들은 IS의 테러리즘이 서구의 실패한 중동정책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를 종식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테러를 확산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구는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을 거듭 선포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고 평화로운 세계질서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여기서 누가 더 많은 책임을 갖고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밝히는 일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이분법적 증오는 테러를 낳고, 테러는 다시 증오를 증식시킨다는 점이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적의를 없애려면 우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아니면 국가이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경청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폭력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에 의지한다.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평등하게 존중받는 민주사회에서는 그만큼 덜 폭력적이다.

폭력에 대한 폭력적 전쟁보다는 '더 많은 민주'가 대안이다. IS 테러리스트가 이슬람교도라고 해서 모든 이슬람교도들을 인종주의적으로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은 더 많은 증오와 폭력을 키울 뿐이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일반 이슬람교도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민주적인 태도이지 않겠는가? 물론 이슬람도 가부장적 문화에서 유래하는 비민주적 요소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서구를 문화적으로 악마시하는 적대주의로부터 탈피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민주적 문화만이 외부의 비판에 대해서도 열려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열린 민주만이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는 증오와 폭력의 문화를 종식시킬 수 있다. 그런데 지난달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나타난 불법 폭력시위가 다시 이분법적 증오의 싹을 틔우려 한다. 불법 폭력시위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전체 시위대를 IS와 비유함으로써 악마시하는 것은 우리사회를 분열시킬 뿐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정당한 시위 현장에서 복면과 쇠창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을까? "통합과 화합"이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훈을 실현하려면 이렇게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사회는 정말 모든 목소리가 경청되는 진정한 민주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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