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영화 '도리화가' 배우·가수 배수지

배우 배수지(21)는 조선 최초 여류소리꾼 진채선을 만난 걸 "운명같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감정을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울컥 눈물이 흘러내렸다. 혹독한 훈련을 하며 성장하는 진채선의 모습이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이리라. 자연스레 과거 연습생 시절을 떠올렸다.

진채선과 수지는 많이도 닮은 듯하다. 수지는 "독기와 오기가 있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가수 박진영이 이끄는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미쓰에이의 멤버이기도 하다.

"제가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옛날에는 더 심했던 것 같고요. 연습생 시절 일기장에 쓴 글을 보면 '와, 내가 이런 글도 썼구나'라고 새삼 무서울 정도죠. 의지에 불타올라 이상한 걸 많이 써놨더라고요(웃음). 어떤 거냐고요? 음, '연습실 오래 남아있기' '제일 먼저 연습실 가기'도 있었는데, '누가 먼저 연습실에 있어서 정말 짜증이 났다'라는 글도 기억나요. 하하."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꾸었던 진채선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도리화가'(감독 이종필). 소재부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수지는 "그래도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1년 정도 틈나는대로 국립창극단의 국악인 박애리 명창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트렌디한 가요를 부를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판소리는 악보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머릿속으로 음을 그리듯 연습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돌아서면 잊어버리더라고요.(웃음) 배울 때마다 음이 달라져서 매번 녹음한 걸 반복해 들으며 연습했죠. 그러더니 나중에 녹음한 걸 들어보면 처음 녹음한 것보다 좋아서 행복했어요."

사실 수지는 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수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그는 노래와 춤이 더 좋았다. 그러던 중 회사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욕심이 생기고 꿈도 커졌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해 초반에는 재미를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재미도 재미지만 촬영 모니터를 보면서 '아쉽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요. 더 재미있어졌죠."

"이제 연기가 재미있어졌다"는 수지에게 언짢을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수두룩한, 특히 연극 무대에는 무명 배우들이나 그들의 감정 연기에 눈물 흘리는 관객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아이돌 출신 수지가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저도 감성이 풍부한 편인 것 같은데요? 가수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에요. 그런 감성적인 면이 플러스 요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수 활동이나 광고를 많이 찍어서 이미지적인 게 강하다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연기자로서, 특히 이번에는 사투리를 쓰고 다른 모습으로 나오니 낯설어서 더 어색해 보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배수지는 거침없이 답했다. 이어 외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닝북'에서 제니퍼 로렌스가 춤을 추는 장면을 언급하며 "전문적으로 춤을 배운 것 같진 않지만 감정이 자연스럽게 보이더라. 전문적으로,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감정이 잘 전달되면 예뻐 보이고 멋져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제니퍼 로렌스를 보고 '도리화가' 속 진채선을 연기하기 위한 영감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만큼 조선 최초 여성 소리꾼 진채선이 된 감정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로도 들렸다.

배수지는 3년 전 영화 '건축학개론' 흥행 이후 캐스팅 요청이 많았을 텐데도 참여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한 배수지는 "'정말 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잡아끈 첫 작품이 '도리화가'였다. 트렌디한 멜로는 당연히 '아웃'이었다. 스승에 연정을 품은, 어찌 보면 더 어려웠을 작품을 택해 내공을 키우는 방향을 택했다.

'도리화가'에서 배수지가 동경의 대상이면서 사랑의 감정을 풍겨야 하는 인물은 류승룡이었다. 배수지는 "채선의 입장에서는 신재효가 스승님이기 때문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의 감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도 잃고 홀로 외롭게 살아온 채선에게 신재효는 아버지 같기도 하고, 유일하게 자신을 알아봐 주고 목숨을 걸고 제자로 키워주는 인물"이라며 "그를 향한 존경과 사랑의 감정을 열심히 표현했다. 물론 스승과 제자이기 때문에 쉽사리 감정을 내비치지 못해 어려운 점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류승룡) 선배님을 만나 영광이에요. 진짜 스승님처럼 많이 알려주셨어요. 한 번은 선배님이 차에서 주무시고 계실 때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면서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 선배님이 친절하게 알려주셨죠. 연기 부분에 대해서 따로 수업처럼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좋았어요."

현실 속 스승인 박진영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디님(박진영을 지칭) 노래를 받고 녹음하기까지의 과정이 혹독하다고 할 수 있어요. 피디님은 0.1초 단위로 디테일하고 노래 가사 하나하나, 음 길이 하나하나를 다 체크하세요. 사실 할 때는 힘든데 좋은 결과로 돌아올 땐 보람도 느껴요. 피디님보다 덜 혹독한 작곡가분을 만나면 나중에 결과물이 아쉬울 때가 있죠. 짜증 날 수도 있지만 좋은 결과물이 있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또 연습생 시절이 힘들고 혹독한 건 자기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끝까지 할 사람은 알아서 열심히 해요. 자기 의지가 강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수지는 내년 KBS 2TV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로 시청자를 찾아온다. 연기가 재미있긴 한가 보다. 벌써 촬영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