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50대 후반의 알뜰한 주부며, 남편과 연애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생활 30여 년 동안 남편을 무조건 믿으면서, 앞만 보고 박봉인 남편에게 보탬이 되고자 온갖 부업을 다 하며 똑소리 나게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돈 없으면 아이들 공부도 안 시키면 그만이지"라는 무책임한 남편의 말에 저는 남편을 의지하지 않고, 세 아들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한눈팔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유한 가정의 막내딸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저는 돈이 뭔지도 몰랐지만 제 자식들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일념이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집은 가난했지만 과묵하고 진실하고 믿음직하게 보여서 제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닮은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세상을 모르고 사람 보는 눈도 없는 철부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제 남편은 평소에도 가정에 무책임하며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이며 체면치레에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아내는 뒷전이고, 남의 여자 시중든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최근 외도가 밝혀지고 내연녀에게 환심을 사려고, 저의 온갖 흉을 거짓으로 꾸며댄 파렴치한 행동까지 했습니다. 그러고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 오히려 '모두가 네 탓이다'며 당당하게 이혼하자고 합니다. 신혼 시절에도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낯선 여자가 '내 사랑하는 남자가 누구랑 사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사건이 있었으며, 남편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주위 사람의 만류에 속만 앓고 삼키며 남편을 하늘같이 믿으면서 생업에 빠져 수십 년을 살았습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일평생 속고 살아온 것이 바보 같고,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혼만이 정답인가요.
귀하는 부유한 가정의 막내딸로 온실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풍요롭게 자랐습니다. 세상모르고 시작한 결혼 생활에서 친정어머니의 교훈인 '남편을 하늘같이 섬겨라'는 말을 실천하느라, 남편을 무조건 믿고 따르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또한 일생 동안 남편의 박봉을 탓하지 않고 경험하지 못했던 갖가지 부업으로 경제 활동 현장에 두 팔 걷고 뛰어든 귀하의 용기는 너무나 대단합니다.
귀하의 가족 사랑과 헌신으로 지금까지 행복한 모범가정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의 결정적인 실수와 배신으로 무참하게 짓밟힌 귀하의 심정을 어떻게 위로하고 보듬어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외도를 인정하면서도 이혼하자며 되레 큰소리를 치고, 이 모든 것이 아내 탓이라고 책임 전가를 하는 것은 들을 가치조차 없는 말입니다. 이기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이 잘못을 반성하고, 아내에게 사죄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 같습니다. 가부장적 사고가 몸에 밴 남자의 속성은 감정 표현에 둔감합니다. 속마음을 표현하는 기술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외도가 잘못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데 왜 남편이 모르겠습니까.
아직 자기가 옳다며 반성하지 않는 남편은 차치하고 자녀를 위해서라도 이혼 안 하고 잘 살아보고 싶다는 귀하의 바람을 위하여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세상을 신뢰하고 남편을 믿으며 성실과 인내로 살아온 자신에게 먼저 큰 박수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큰 사랑과 노력으로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하였고 가정이 원만하게 지켜졌습니다. 온실 속에서 고이 자란 귀하가 비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생업에 뛰어들어 말없이 남편의 경제 능력에 보탬이 되고자 했습니다. 큰 노력 없이 가정이 순조롭게 유지되니까, 남편은 그저 아내에게 모두 맡겨버리고 최소한의 의무만 수행한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왕책임가 옆에는 무책임가가 있다고 합니다.
둘째, 30여 년 결혼 생활을 돌아보며 남편과의 대화나 관계의 패턴을 탐색해 보십시오. 누가 주도적인 위치에서 가정을 리더하였는가. 가정 내 남편의 위치는 어디였는가, 남편과 허심탄회하게 의논한 적이 있는가,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은 없었는가, 남편은 자신이 불리하면 입을 다물고 회피하며 귀하를 무시한다고 했는데, 내가 상대를 무시할 때 상대도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지각합니다.
셋째,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확인하고 지금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지 구체화하여 실천합니다. 자녀를 위하여 이혼하지 않고 잘 사는 것이 나의 바람임을 받아들이며, 남편이 반성하고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에게 부부 상담을 받아 귀하의 억울함을 먼저 충분히 풀고, 남편의 진심 어린 사과로 과거를 청산하며, 부부 소통 기술을 배워 재혼한 새로운 부부로 새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남편에 대한 분노로 서슬이 퍼렇던 아내가 자식 앞에서는 또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여자입니다. 유복하게 자란 사례자의 경우 친정에서 배운 부녀자의 행실을 일생 동안 실천하며 가정에 헌신했으나, 남편의 배신으로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생각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내려놓고, 남편을 받아들이고자 하며 뻣뻣하게 반항하는 남편의 반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가치관을 가진 남성들은 감정 표현에 아주 미숙합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등의 말은 마음속에 있으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본 사례자의 남편은 평소 똑똑하고 현명하게 일 처리 잘하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표현 대신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려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내면은 약하고 여릴 수 있습니다. 아내의 인정을 받으려고 가까이 가려면 경제력이 전부임을 느끼며 좌절합니다. 이런 악순환 끝에 가정 밖에서 피상적인 관계를 하며 본의 아니게 아내와 결별해야 하는 엄청난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아내가 남편의 외도에도 자녀를 위하여 함께 살기를 선택합니다.
이런 경우 필자는 첫째, 남편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며 아내의 한풀이에 동참한 후, 자신의 공을 스스로 격려하도록 합니다. 둘째, 자신의 긴 결혼 생활 중 남편과의 관계를 위한 나의 노력을 돌아보게 하며, 온전히 남편의 입장에 서 보도록 합니다. 셋째, 부부가 함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가정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 출발을 요청합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