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름 많을건데 하필 광-대가 뭡니까?"

입력 2015-12-02 20:00:57

광주-대구 고속도로 명칭 논란…정부 "6개 지자체 의견 다른데다 '달빛' 명칭 추상적"

88올림픽고속도로가 반듯하고 시원하게 확 뚫렸다. 2일 직선화 구간인 경남 함양군 병곡면 부근 병곡터널에서 도로 표지판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88올림픽고속도로가 반듯하고 시원하게 확 뚫렸다. 2일 직선화 구간인 경남 함양군 병곡면 부근 병곡터널에서 도로 표지판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명칭 변경 정부 입장…"출발지-도착지 지자체명 넣는 규정 따라 결정했을 뿐

6개 지자체 의견 다른 데다 '달빛' 명칭 너무 추상적"

국토부는 지난달 25일 도로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88올림픽고속도로의 이름을 '광주-대구간 고속도로'로 변경, 확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2일 "대구와 광주에서 동서 화합을 의미하는 달빛고속도로 등의 이름으로 결정해 달라고 했지만 고속도로가 지나는 6개 지자체 의견이 서로 엇갈렸고 도로명을 정하는 원칙에 따라 광대고속도로로 이름을 정했다"고 밝혔다.

88고속도로는 대구에서 출발해 경북, 경남, 전남과 전북을 거쳐 광주로 이어진다. 명칭 확정 전 국토부는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6개 지자체 담당자들을 불러 의견 수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대구와 광주는 '달빛고속도로'로 명칭 변경을 강력히 건의했다. 하지만 경남도는 기존 명칭인 88고속도로 고수를 강력히 주장했고 전남과 전북은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결국 지자체들의 의견 합의가 불발되면서 국토부는 광주대구고속도로안을 제시했고 위원회는 이를 확정했다.

국토부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출발과 도착지 지자체 명을 넣는 도로명 규정에 따라 대구광주고속도로로 명칭 변경을 확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88고속도로 도로명 변경 이전에 충분히 조정을 거쳤지만 지자체 의견이 서로 달랐고 달빛이란 명칭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또 광주대구고속도로로 이름을 정하고 별칭으로 '달빛'을 쓰자는 대구시와 광주시 제의도 있었지만 다른 지자체들이 동의하지 않아 통과되지 않았다.

대구시 관계자는 "광주대구고속도로로 확정된 이후 어감 등을 고려해 대구광주고속도로로 변경을 요청했지만 도로명 기준 원칙과 맞지 않는다며 국토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달빛고속도로로 명칭을 변경해 달라며 국토부에 건의한 사항이 결국 도로명 원칙에 따라 이름이 변경된 셈"이라고 밝혔다.

◇대구경북 '지방 홀대'…"광주와 합의한 도로 이름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외면하다니"

88올림픽고속도로의 명칭을 '달빛고속도로'로 변경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구경북에서 "지역요구를 무시한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구경북 정치권과 시민단체, 주민들은 광주와 대구 지역 사회가 합의한 도로 이름을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외면한 것은 '지방 홀대'라며 반발하고 있다.

동서화합의 의미에서 '달빛고속도로'를 제안했던 박용선 경북도의원은 "달빛고속도로라는 이름은 그동안 반목했던 대구와 광주가 화합한다는 의미가 있다. 억양도 부드럽고 친근하다"며 "옛 지명에서 따왔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역 역사에 대한 부정"이라고 했다.

최광교 대구시의원은 "국토교통부가 결정한 '광대고속도로'(약칭)는 광주와 대구가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교류의 정신을 무시한 우스운 이름"이라며 "옛 명칭의 머리글자를 따온 달빛고속도로는 현재 표기법에도 문제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도 불만을 터뜨렸다. 김정현(34'동구 방촌동) 씨는 "줄여 부르면 '광대'가 되는 이름보다 '달빛'이 부르기도 좋고 정감이 있다"며 "오히려 특색 있는 도로 이름으로 인해 지역의 차별성과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와 광주가 그동안 교류를 이어온 '달빛동맹'의 취지가 고속도로 이름 변경 과정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찬성하지 않는다고 조율이나 조정할 시간을 더 주지 않고 원칙을 앞세워 결정해 아쉽다"고 했다.

정부가 지방정부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는 "'달빛'이란 명칭은 교류사업을 추진해온 지자체와 주민들의 공감대가 어우러진 바탕 위에서 제안됐다"며 "단순한 이름을 넘어 지방분권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도, 중앙정부는 기존의 관료적인 관행만 내세워 '광주대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이 상임대표는 "88고속도로 자체가 지역 표기 없이 '올림픽'을 상징했다는 전례가 된다"며 "지방분권과 화합을 상징하는 '달빛'이란 명칭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88고속도로의 역사…80년 전두환 前대통령 '동서고속도로' 건설 지시

왕복 2차로에 급경사·급커브 인해 사고 자주 발생

88올림픽고속도로의 역사는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9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전북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지리산 관통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정부는 '동서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추진했고, 1981년 10월 16일 기공식을 열면서 '88올림픽고속도로'로 다시 이름을 변경했다. 국민이 염원했던 88올림픽 유치를 기념하고, 영'호남 화합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88올림픽고속도로는 1984년 개통 이후 '무늬만 고속도로'로 전락했다. 3년이라는 짧은 공사 기간 안에 180㎞에 달하는 도로를 건설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가야산, 덕유산, 지리산 구간에 만들어진 급경사와 급커브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없었고, 왕복 2차로 도로로 추월이 불가능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제한속도 최고 시속이 80㎞에 불과해 '지방도로보다 못한 고속도로'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죽음의 도로'라고 불릴 만큼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한국도로공사와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0년 당시 88올림픽고속도로 사고의 치사율은 무려 42.86%에 달했다. 당시 고속도로 평균 치사율 9.55%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이후 중앙 분리봉과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을 늘리고 환경개선 사업을 진행해 사고율을 줄이긴 했지만,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여전히 치사율이 높았다. 지난해 88올림픽고속도로의 치사율은 19%로 전국 모든 고속도로 중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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