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조선시대 선비의 '사부곡'

입력 2015-12-01 01:00:06

300년 뛰어넘어 책으로 나왔다

임재당 선비가 쓴
임재당 선비가 쓴 '갑진일록'

약 300년 전 조선시대 한 선비가 19년을 함께 살다 먼저 세상을 뜬 부인을 그리며 남긴 애틋한 일기, 그리고 일기 속 100편의 도망시(悼亡詩)가 '나 죽어서 당신 만나면 이 슬픔 그치겠지요'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전남 보성에 살았던 임재당(任再堂'1686∼1726)이란 선비가 책을 탄생시킨 주인공. 그는 21세 때 결혼한 홍처일의 딸(1683∼1724)이 숨지기 직전인 갑진년 1724년 6월 20일부터 1726년 5월 1일까지 부인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갑진일록'이란 기록을 남겼다.

임재당의 '갑진일록'은 일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사료를 수집해오던 사단법인 나라얼연구소 조원경(58) 이사장이 지난해 8월 우연히 고서적 경매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조 이사장은 "'갑진일록'이라는 표지를 포함해 22장 44쪽의 정자체 한자로 쓰여진 글 첫 줄에 '부인이 병에 들었으니'라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조선시대 일기는 부인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데 첫 줄이 이렇게 돼 있어 관심을 확 끌었다. 이 일기를 사 며칠을 두고 읽었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남성들이 감정표현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임재당의 일기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을 그리워하며 눈물겹게 써내려간 시가 너무 감동적이라 번역을 했고 책으로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갑진일록'은 갑진년(1724) 6월 29일 임재당의 부인이 죽은 날 바로 9일 전부터 시작한다. '부인이 병에 걸렸는데 열병이나 돌림병인 듯하다. 정신이 흐릿해 약을 몇첩 먹었는데 차도가 없어 이미 죽은 사람과 같다…'라는 내용으로 서두를 뗀다.

'29일 아침 10시 (아내를) 도저히 살리지 못해 삶을 마치게 했으니 참으로 슬프다. 지금 비참한 마음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으랴''6월 30일. 시신을 염습했다. 이게 꿈인지 사실인지. 대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는 아내를 염습한 날 부부가 함께했던 19년을 회상했다. "1722~1723년 두 해 동안 내가 병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때 (아내는) 아침저녁 쉼 없이 병을 고치려고 간호했다.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 '하늘이 나를 돕는다면 반드시 남편보다 나를 먼저 데려가라'고 했다…."

이 일기에는 언제 누가 문상을 왔고, 당시 국장이 있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다가 그해 11월에 장례를 치렀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어 당시의 상례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도 평가받고 있다.

선비는 복받치는 슬픔과 그리움 등을 100편의 한시로도 표현했다.

'마당의 모과 벌써 처음 익어/ 영전에 바치니 마음 더욱 슬퍼지네/지난날 그대와 함께 모과 열매 보았어도/오늘 함께 맛볼 수 없음 어찌 알았으랴.' 아내와 함께 심었던 모과나무에서 열매가 익었으나 함께 맛보지 못하는 애절한 심정을 표현한 시다.

'꿈에 어머니와 부인을 보았다. 양자를 들였지만 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고, 서로 알릴 길도 없어 슬프고 슬플 뿐이다…'라는 등의 일기는 병오년(1726) 5월 1일까지 2년 가까이 계속된다. 임재당은 이 일기가 끝난 후 2개월 지나 아내 곁으로 간다.

임재당의 양자는 무과에 합격했고, 손자는 과거에 급제해 정육품 이조좌랑에까지 올랐다.

한편 임재당의 후손들은 오는 12일 나라얼연구소 회원들을 보성으로 초청해 출판기념회를 열 예정이다.

경산 김진만 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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