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하이(さいはい)가 형편 없었다.' 폐막한 '프리미어 12' 준결승 한'일전 결과에 대한 일본 언론과 야구계의 반응이다. 그들 표현을 빌리자면 단 1안타로 한국팀을 주무르던 오타니가 마운드를 내려간 뒤 후속 투수들이 한국의 도깨비 방망이에 홀린 듯 얻어맞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억울하게도….'
우승은 떼논 당상이라며 김칫국부터 마셨다가 결승전 문턱도 밟지 못하자 일본은 말그대로 초상집이었다. 아닌 말로 결승전 선발 투수까지 미리 공개하며 한'일전 승리를 자신한 터라 충격이 매우 컸을 것이다. 인터넷은 패장 고쿠보 감독의 '사이하이'(采配'지휘력)를 성토하는 댓글로 도배됐다. 한 수 아래로 여긴 한국에 그것도 완봉승까지 엿봤던, 도저히 질래야 질 수 없는 경기를 망쳤으니 울화통이 오죽했겠나.
하지만 냉정히 복기해 보자. 일본 반응대로 초보 감독의 미숙한 경기 운영과 어설픈 용병술이 잔칫상에 재를 뿌렸나? 물론 경기의 흐름을 놓친 감독의 안이한 판단이 패착인 것은 맞다. 그러나 더 근본 원인은 이 정도 투수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자만심, 입맛대로 일정을 바꿔서라도 대회의 주인공이 되려고 한 억지와 무례가 부른 참화다. 일본 야구의 근거 없는 오만, 더 넓게는 일본인의 나태한 집단적 우월 심리가 도쿄대첩을 불렀다는 게 솔직한 관전평이다. 팀명대로 '사무라이 재팬'의 결기는 그럴듯했으나 광고처럼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왕의 자리'였다.
지난 경기를 장황하게 곱씹는 까닭은 '사무라이 재팬'보다 더 심각한 화를 자초한 부류가 우리 내부에도 있어서다. 우리 정치판이다. 경제는 냉골이고 민심은 분노와 좌절 일보 직전인데도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여야는 눈만 뜨면 으르렁대고 집안 싸움으로 지리멸렬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타고난 무능과 오만을 헤게모니 싸움과 온통 버무려놓은 통에 경제와 안보, 사회 모두 큰 흐름을 놓치고 민생을 아예 질식 상태로 내몰고 있다.
4대 개혁과 각종 민생 법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구정물이 된 지 오래다. 19대 국회 내내 그랬다. 압권은 한'중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벌인 여야의 협잡술이다. 특수활동비 예산과 누리사업 국고지원 등 26개 조건을 연계시키는 '야당병'이 또 도졌다. 국익이 걸린 국가 중대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고작 "법안을 함께 처리하면 야당을 무시해온 (여당의) 태도가 용서될 것"이라는 말이나 내뱉을 정도니 그 정치, 참 수준 높다. 고액의 세비 받아챙기고는 4년 내리 놀고먹은 '정치 백수' 티 내는 것도 아니고. 그 알량한 체면 따질 요량이면 4년마다 표 구걸하는 용기와 주변머리는 어디서 나오는지.
승부는 잔머리나 잔기술이 아니라 뚝심과 흐름이 결정한다. 무엇이든 한'일전 야구처럼 한순간에 경기 흐름이 바뀌고 승부가 뒤집힐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흐름을 잡아내고 끝까지 대응력을 잃지 않은 한국이 비록 썩 만족할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마침내 주인공이 됐다.
문제는 지금 우리 정치판이 놓치고 있는 중요하고 다급한 흐름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흐름은 정당과 계파 이익, 소수 집단'계층의 이해에 코를 박고 눈을 감는다면 결코 손에 쥘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넓고 멀리 봐야 흐름이 보인다는 말이 괜한 소리인가. 정치판과 관료사회, 기업이 계속 제 이익을 따지고 앙앙댄다면 흐름은 반드시 우리를 비켜가게 되어 있다.
한국 야구는 불리한 여건을 뛰어넘어 우승했다. 두 번을 지고도 월계관을 썼다. 이제 대한민국이 미래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할 때다. 잔머리나 굴리며 계산할 시간이 없다. 숨죽이고 쫓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땀 닦고 목축이고 언제 간극을 좁히나. 지금 정치판의 버릇대로라면 경제는 계속 진창이고 민생은 파탄이다. 입으로만 민생과 소통'화합 떠벌리는 우리 정치꾼들에게는 이런 광고 문구가 딱 맞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낫싱(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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