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을 지나면서, 계절은 어느덧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지만 여기저기 붕어빵 노점이 문을 열었다. 추위를 녹이기 위해 호호 불며 한 입 바싹 깨무는 붕어빵, 그 먹는 모습에서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고 한다. 꼬리부터 먹으면 신중한 성격, 머리부터 깨물면 급한 성격, 배부터 먹으면 활동적이고 원만한 성격…. 믿거나 말거나지만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성격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간과할 수 없는 듯하다.
이맘때면 집집마다 겨울채비를 하는데 최우선 순위는 뭐니 뭐니 해도 김장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빠질 수 없는 고마운 먹거리인 김치! 그 김치가 맛있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배추가 무려 다섯 번이나 죽어야 한다. 땅에서 뽑힐 때 뿌리가 잘려 한 번 죽고, 배추의 몸통을 좍좍 두서너 번 가르면서 두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는 고문을 당하며 세 번 죽고, 매운 고추와 짠 젓갈에 뒤범벅이 되면서 네 번 죽고, 마지막 3일은 너무 이르겠지만 약 30일 후면 배추는 눈부신 부활을 한다. 잘 익은 맛에다 고운 빛깔을 지니고 세상으로 돌아온다. 되돌아보면 배추의 생애는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겠지만 그 값으로 제대로 된 맛을 지니게 되어 그 인기는 이미 세계로 퍼져 가고 있는 추세다.
김치를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네 인생도 저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삶 속에서 김치처럼 맛깔스러운 숙성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욱' 하고 치미는 성질을 죽여야 하고, 자신만의 외고집을 죽여야 하며, 남을 보는 편견과 고정관념도 죽여야 한다. 그래야 나뿐 아닌 서로가 윈윈(win win)하며 살아나서 원만한 삶을 유지하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성질을 죽임으로써 도리어 살아날 때가 허다하다.
김치가 제대로 맛을 내기 위해서 다섯 번이나 죽어서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고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듯이 우리의 삶도 김치처럼 숙성시켜 풍부한 삶의 맛을 우려내 보자. 그리하여 그 맛을 서로 나누고 소통하며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보자. 우리 주변에서 김치처럼 죽어서 사는 또 다른 것들도 곰곰이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 같다.
한때 프리허그(Free Hug)가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허그'의 어원은 '편안하다'와 '위안을 주다'에서 유래하며, 포옹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자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메마른 땅에 단비 같은 허그, 종일 일터에서 혹은 학교에서 지쳐 돌아온 가족을 힘껏 껴안아 주자. 그리고 맛있게 버무린 김장김치로 매콤하고 짭짤하게 차린 저녁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자. 첫눈이 소리 없이 내릴 것 같은 포근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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