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립싱크하다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의 올해 다섯 번째 초대작가는 영상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안정주다. 안 작가는 서울대 미대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구와 서울, 독일 등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억공작소'는 봉산문화회관이 중견작가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기획한 전시다.
전시장 입구 벽에 걸린 사진 한 점. 일부 형태를 오려낸 벨기에 브뤼셀의 독립문 기념사진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종이인형 오리기가 생각난다. 오려낸 공간을 채우는 할로겐 빛의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오려낸 모양이 자동차와 나무, 깃발, 사람임을 미루어 추측할 수 있다. 또 그것이 소리를 내는 것들의 이미지라는 것도 알게 된다.
안쪽 벽면의 영상에는 담배를 피우려고 베란다에 나온 흰 셔츠를 입은 남자의 움직임과 함께 소리가 들린다. 담배를 피우는 화면 속 인물의 호흡과 미세한 움직임에 덧씌워진 소리는 '만지작만지작' '피~후' '물끄럼' '풀썩' 등 상황에 잘 일치하지만 원래 소리가 아닌 사람의 입으로 내는 소리이다. 조금은 어설픈 립싱크는 무심한 일상행위에 집중하도록 하는 매력이 있다.
'Smoking'을 비롯해 'Fishing' 'Crossing' 등 3편의 영상은 2분 30초 간격으로 연속해 반복 재생된다.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는 이미지에 결합시킨 립싱크, 도로를 횡단하는 사람과 주변 광경을 담은 이미지를 립싱크한 영상을 보면서 관람객은 이미지에 가려 보지 못했던 소리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반대편 벽에는 모니터와 3점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모니터에는 유럽의 유명 관광지와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을 촬영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지나치는 사람의 행동과 주변 움직임의 소리는 유쾌, 발랄하고 생기가 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소리, 여행자의 감탄사, 카메라 셔터 소리, 바쁜 발걸음 소리, 깃발의 무심한 펄럭임과 나뭇잎의 마찰 소리는 가볍게 스치는 일상의 소리로 모두 사람의 입으로 내는 소리이다. 베를린, 브뤼셀, 마드리드, 파리, 인스브루크, 로마 등지의 역사적 건축물을 촬영한 6편의 영상은 연속적으로 반복된다. 영상에선 그 장소 원래의 현장 소리가 아닌 촬영한 지역 참여자들의 언어와 목소리로 화면 속의 움직이는 대상을 묘사하는 립싱크가 흘러나온다.
봉산문화회관 정종구 큐레이터는 "안 작가는 세상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다루면서 시각적 경험이 소홀히 했던 소리, 그에게는 시적 영감과 음악적 존재감을 강화해주는 소리에 대한 미적 경험을 호흡으로 즐긴다"며 "마치 칼로 오려낸 밑그림 위에 빛으로 긋고 색을 덧칠하듯 다층적인 소리를 입히는 시각예술의 다른 가능성을 그려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주 Lip-sync'전은 12월 27일(일)까지 봉산문화회관 2층 제4전실에서 열린다. 053)6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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