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에 맞춰 내 미래가 결정된다면 불행하지 않은가
우리나라 고교생들은 언제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 학과를 결정할까? 가장 많은 경우는?
답은 수능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날이다. 대학입시에서 정시모집 비중이 컸던 과거에는 당연히 그랬지만 수시모집 비중이 훨씬 더 커진 최근에도 이런 경향은 잘 바뀌지 않고 있다. 꿈과 끼를 중시하는 현 정부의 목표대로 중학교와 고교 생활 동안 꾸준히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발견하고 키워 그에 가장 적합한 전공을 선택하는 수험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수시모집 지원 때는 자신이 희망하는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최상위권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학 수준에 따라 지원 학과도 달라지는 수험생이 적잖다. 자신의 내신 성적이나 교내 활동, 논술 실력 등에 비춰 합격선에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평소 희망 학과를 선택하지만 대학 수준이 높아지면 그만큼 합격선이 낮은 학과, 대학이 낮아지면 합격선이 높은 학과를 쓰는 식이다. 예를 들어 평소 경영학과 진학을 희망한 학생이라면 합격선에 있는 대학에 지원할 경우 경영학과를 쓰지만 그보다 합격선이 높은 대학이라면 사회과학대학, 다시 좀 더 합격선이 높은 대학은 인문대를 쓴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날은 더욱 복잡해진다. 점수에 맞춰 대학도, 학과도 널뛰기를 하는 것이다. 평소 희망한 학과의 합격선에 근접한 성적을 받았다면 그대로 지원하겠지만 그보다 나은 성적을 받았다면 상위 대학의 합격 가능한 학과를 찾고, 더 못한 성적을 받았다면 그 대학의 낮은 학과나 하위 대학의 높은 학과를 찾아보게 된다. 평소 희망하던 전공이나 자신의 적성, 미래 계획 등은 사라지고 오로지 점수에 맞춰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학과에 합격하기 위해 고심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대학 간판을 중시하고 학벌을 따지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렵사리 입학한 대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반수를 선택하는 학생, 휴학을 하거나 군대를 다녀온 뒤 다시 재수하는 학생이 허다하다. 심지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이 여의치 않아 전문대에 다시 입학하는 학생이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계속 되풀이되고, 오히려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 미래 계획 등을 크게 고민하지 않은 채 공부와 시험에만 매달리는 데 있다. 학과를 선택할 때도 상식 수준의 이해만으로 결정해 버린다. 그 학과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교수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 졸업하면 어떤 진로가 펼쳐지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생명공학과와 생명과학과가 같은 학과라고 생각하는 수험생이 있겠는가.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진로'전공 특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고교 1, 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경영, 심리, 정치외교, 생명공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 교수들이 5회 15시간 정도 강의를 한다. 고교 단위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한 시간짜리 전공 특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용을 다룬다. 특강을 들은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막연하게 진학을 희망했던 학과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나니 동기 부여가 확실히 돼 학습 의욕이 높아지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해당 학과가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로를 바꾸는 학생들도 있다.
두 부류 모두 바람직한 결과다. 어쩌면 전공을 바꾸겠다고 생각한 학생들에게 더 소중한 시간이었을 수 있다.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가 그때 가서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후회할 상황을 미연에 방지했으니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수시모집을 앞두고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가 진행한 '학생부 종합전형 대비 프로그램'에서 1, 2년 전 '진로'전공 특강'을 들었던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특강을 들었던 사실을 썼을 뿐만 아니라 특강을 통해 동기 부여가 됐다거나 다른 학과로 바꾸었다는 소감을 밝혔기 때문이다.
경상계열 학생들의 손에 종종 들려 있는 '맨큐의 경제학'에는 참고할 만한 뉴스가 실려 있다. '미국 멜런 재단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76년에 예일대학이나 스와스모어대학과 같이 들어가기 어려운 일류 대학을 나온 졸업생들의 평균 연봉은 9만2천달러로 평범한 데니슨, 튤레인 대학을 나온 졸업생들보다 2만2천달러를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갖춘 고교생 가운데 일류 대학과 평범한 대학에 진학한 학생 519명의 평균 소득을 조사해 보니 대학과 무관하게 소득 차이가 거의 없었다.'
이는 결국 대학의 간판보다는 개인의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들기 전에 자신의 적성과 미래 계획 등을 더 고민해 보고, 지원하고자 하는 학과에 대해 좀 더 열심히 알아본다면 점수에 맞춰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 버리는 잘못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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