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을씨년스럽다

입력 2015-11-21 01:00:15

1982년 전북 익산 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1982년 전북 익산 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잿빛 하늘에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오색 빛깔 아름답게 물들었던 나뭇잎들도 저마다 영롱했던 색을 잃고 죽은 낙엽이 되어 길바닥에 나뒹군다. 스산하고 서늘한 날씨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난다.

청명한 하늘에 상쾌한 바람이 부는 10월도 아닌, 새해를 앞둔 들뜬 분위기의 12월도 아닌, 가을과 겨울 사이 11월을 떠올리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11월을 색에서 꼽으라면 회색,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을씨년스럽다'로 말할 수 있겠다. '을씨년스럽다'는 태생부터가 불행하다. 1905년 을사년(乙巳年) 11월 17일, 일본은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을 속국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으로 을사년은 우리 민족에게 비통하고 서글픈 해로 기억된다. 그래서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침울할 때면 그해를 떠올리며 '을사년스럽다'고 하던 것이 지금의 '을씨년스럽다'로 변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낭만의 도시로 대표되는 프랑스 파리의 2015년 11월 13일은 '을씨년스러운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프랑스와 독일의 축구 경기로 응원 열기가 한창인 금요일 저녁, 파리의 도심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든 지옥의 도시가 됐다. 6곳에서 터진 동시다발적인 폭탄 테러로 130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300명이 넘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우아한 샹송이 흐르던 거리는 고통을 동반한 절규와 아우성으로 가득했고, 폭탄에 무너진 건물과 잿더미로 변해버린 상점들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파리를 넘어 프랑스 국가 전체가 충격과 공포, 슬픔에 휩싸였다.

파리의 참상이 전해진 다음 날, 대한민국도 11월 14일을 '을씨년스러운' 하루로 서록했다. 평소 서울 시민의 쉼터로 관광의 명소로 사람들로 북적이던 광화문 광장은 주말 저녁,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손에는 쇠 파이프나 각목 같은 흉기들이 들려 있었고 날카롭게 깨진 병들과 벽돌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현장에선 "끌어내려, 잡아 죽여"라는 살인적인 고성이 오갔고 거대한 살수차가 등장해 대포 같은 물줄기를 사정없이 쏘아댔다.

'을씨년스러운' 그날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테러의 주범이 무슬림 이민자로 밝혀지자 관용의 나라인 프랑스 파리에서도 무슬림에 대한 반감과 공포가 커졌다. 그런데 한 무슬림 청년의 눈물 어린 호소에 프랑스 고유의 톨레랑스(tolerance) 정신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으로는 총도 이길 수 있다'는 한 아버지의 인터뷰도 회자하면서 파리는 그날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 가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일주일은 파리와 달랐다.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양극단으로 나뉘어 더 치열한 2차 전쟁을 예고했고 정치권은 한발 더 나아가 분열을 부추겼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 세계가 IS 척결에 나선 것처럼 우리도 불법 폭력 시위대 척결에 나서야 한다"며 시위대를 테러 집단인 IS에 비유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일 의경을 보면 눈물이 난다"던 김 대표의 눈에 누군가의 소중한 아버지일 시위 참가자는 처단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야당 역시 시위 참가자로 중상을 입은 백남기 씨를 내세워 정부를 비난하기에만 급급했다. 여야 모두 피해를 당한 우리 국민을 위하기는커녕 정쟁의 도구로 자기 정치에 이용할 뿐이었다.

애초 광화문 혈투의 시작은 정치권이다. '노동개혁'과 '국정화 교과서'라는 논쟁의 불씨는 사회에 던져놓고 여론을 살피며 정작 본인들은 마음을 콩밭에 두고 있는 듯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할 2차 전쟁은 이제 국회에서 설전(舌戰)으로 치러야 한다.

다가올 2016년은 을씨년스러운 한 해가 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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