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주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예능인 정형돈이 불안장애 증세를 호소하며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증상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엔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 관계자들과 동료 출연자들에게 활동 중단 의사를 밝혔다. 이어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도 부랴부랴 상황을 정리한 후 정형돈의 활동 중단 사실을 보도자료로 알렸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지만, 사실 정형돈 본인은 오랜 시간 불안장애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무한도전'을 비롯해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이제 1회 녹화를 마친 MBC 신규예능 '능력자들' 등 각 방송사 주요 프로그램의 제작 일정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이 3편을 비롯해 MBC 에브리원 '주간아이돌' 등의 프로그램은 정형돈의 비중이 워낙 커 그 공백이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에도 6회 분량으로 기획된 K STAR '돈 워리 뮤직', 그리고 KBS2 TV '우리 동네 예체능'도 정형돈이 잠정하차하게 되면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숨도 못 쉴 정도의 패닉, "방송 못 할 것 같다" 의사 전해
정형돈의 활동 중단 소식이 알려진 건 지난 12일이다. 이날 정형돈은 '무한도전' 녹화현장까지 가서 김태호 PD를 비롯한 제작진과 유재석 등 멤버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대로는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다고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 사과의 말도 전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멤버들과 제작진은 정형돈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장애로 힘들어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을 터. 안타깝지만 정형돈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전날인 11일에도 정형돈은 '우리동네 예체능' 녹화 중 불안장애 증상을 호소하며 힘들어했다.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힘들어하다 "이제 더 이상 방송을 못 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눈에 봐도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얼굴색이 좋지 않아 "다시 한 번 생각해봐라"는 말을 건넬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측도 당황했다. 김성주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인기 견인차 역할을 했던 정형돈의 부재가 프로그램에 만만찮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셰프들이 주인공처럼 보이긴 하지만 프로그램 전체에 활력과 재미를 주는 요소가 김성주와 정형돈의 찰떡같은 호흡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형돈의 활약이 워낙 두드러졌던 만큼 대체할 MC를 찾기보다 정형돈의 쾌유와 복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정형돈의 비중이 절대적인 '주간 아이돌', 그리고 그 외 프로그램 제작진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근거가 불분명한데도 불구하고 '4대 천왕'이란 수식어가 그리 어색하지 않았을 정도로 연일 상승세를 타던 예능인이라 대체할 인물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앓아왔던 장애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가 밝힌 것처럼 정형돈의 불안장애 증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했고 방송을 통해서도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말을 수차례 전한 바 있다. 지난 2013년에도 '무한도전'의 'NO 스트레스' 특집 편에서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에 따라 '멤버 중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당시 정형돈은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이직을 생각하는 일이 잦고 뱀과 바퀴벌레, 곱등이 등이 우글거리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이후 전문의는 "행동패턴을 살펴보면 정형돈이 자주 발을 동동 구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내면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표출된 것"이라며 "교감, 부교감 신경 수치 조사결과 모두 낮게 나왔다. 두 신경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풍선 고르기 등의 테스트에서도 흰색을 골랐는데 이는 회피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정형돈이 술을 마시면 전화를 걸어 펑펑 울 때가 있다. 그래놓고도 본인은 기억을 못 하더라"고 말하자, 전문의는 "억압된 정서의 표출이며 그 후엔 잊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정형돈은 전문의의 진단과 멤버들의 증언을 들으며 부정하지 않고 씁쓸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정형돈은 '무한도전' 외 타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도 "미래가 불안하다" 등 걱정거리를 털어놓곤 했다. 데프콘과 음반을 낸 후 '대박'을 터트렸을 때도 "너무 잘되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 특히 본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공식석상에 나서는 걸 극히 꺼리기도 했다. 인기가 치솟으며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는데도 응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기본으로 챙기는 제작발표회나 간담회도 대부분 고사했다.
어쨌든 이런 일들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정형돈이 기자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꺼려한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자'를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기자간담회나 1대1 인터뷰 자리에서 말을 잘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도 자신이 내뱉은 말이 기사화되는 상황에 대한 부담과 강한 책임감 때문에 힘들어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앞서 '개그콘서트'에서 활동하던 정형돈은 이경규의 눈에 들어 소위 '규 라인'에 합류하면서 버라이어티로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슬럼프를 경험했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준비된 개그를 보여주는 것과 순발력과 재치를 요구하는 버라이어티의 온도 차가 커 능력발휘를 하지 못했던 것. '무한도전'에서도 분량 확보를 못 할 정도로 애를 먹다 결국엔 '웃기는 거 빼곤 다 잘하는 예능인'이라는 황당한 이미지로 한동안 연명했다. 개그맨이 '뭘 해도 재미없다'는 말을 듣고 살았으니 이때 받은 스트레스도 상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다 꽤나 긴 고생 끝에 자신의 캐릭터를 확고히 하면서 소위 '개그발'이 터져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현재까지 줄곧 상승세였다.
수차례 진행된 '무한도전' 가요제 특집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멤버로 꼽혔으며 자신과 파트너를 이뤘던 뮤지션들까지 스타 반열에 올려놔 화제가 됐다. 정재형이나 혁오밴드, 데프콘 등이 정형돈과 함께하는 동안 인지도가 급상승한 대표적인 인물들. 심지어 인기 정상의 아이돌 지드래곤까지 정형돈과 함께하면서 시너지효과를 내 '정형돈 옆에 서면 성공한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원톱 메인 MC'로 자리를 굳힌 건 아니었지만 투입되는 프로그램마다 '중박' 이상의 결과를 내놨고 그 안에서 대체인물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여줘 예능인으로서 매력과 실력을 인정받았다. 입담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개그콘서트' 등 무대에서 쌓은 연기력에다 오랜 적응기와 숙련기를 거치며 얻은 재치를 더해 빈틈을 적절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해냈다.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하는 파트너와의 호흡에서 '치고 나갈 때'와 '빠질 때'를 적절히 알고 활용하는 예능인이었다. 운동신경이 좋고 머리회전까지 빨라 '몸 쓰는 예능'이든 '머리 쓰는 예능'이든 못할 게 없는 인물이었다.
정형돈은 '안티팬'이 드문 호감형 예능인이다. 결혼 후 쌍둥이 아빠가 되고, 하는 일은 척척 성공을 거두니 외적으로 남 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부러움 자아내며 사는 인물이 혼자 썩어들어가는 속을 부여잡고 힘들어했다니 이것도 모순이다. 웃음을 주고 살면 본인도 즐거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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