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한국시리즈였다. 1승 뒤 4연패. 변명의 여지없는 삼성 라이온즈의 완패였다. 하지만 삼성 선수단은 시상식에 참여해 아픔을 안긴 상대를 축하해 박수받았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선례가 없는 일로, 류중일 감독의 결단이었다고 한다.
골수 삼성 팬임을 자처하는 나 자신에게 이번 한국시리즈는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기자 처지에서 이번 시리즈가 서울 잠실구장에서 일찌감치 끝나 다행이었다.
가을 야구가 시작되면서 많은 질문과 부탁을 받았다. 대부분 질문은 "삼성이 이기느냐"는 것이었고, 부탁은 "입장권을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누구에게나 "이긴다"고 했다. 이긴다는 객관적인 자료나 확신이 들어 그렇게 대답한 것은 아니었다. 야구팬으로서, 대구경북 연고의 프랜차이즈 팀에 대한 예의였다.
오로지 삼성의 승리를 기원한 팬들이 한둘이었겠는가. 대구경북 지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삼성이 우승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삼성의 우승이 좌절된 뒤, 이웃집 아주머니는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열광적 야구팬인 남편이 삼성의 패배에 과격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팬들은 삼성과 류중일 감독을 원망했다. 도박 물의를 빚은 주력 투수들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했다.
이런 다양한 반응 속에 뇌리를 파고든 질문도 있었다. "삼성이 꼭 우승해야 하나요?" 지나가면서 들은 이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사실 삼성이 통합 5연패에 도전한 올 시즌, 어느 때보다 이 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삼성이 우승을 독식하면 프로야구 보는 재미가 줄어들고, 프로야구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지역의 야구 관계자들은 삼성이 우승에 도취해 지역 실정을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삼성 일등주의' 앞에 지역민들의 이해관계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럼에도, 지역의 기관'단체에서는 '지역 이기주의'로 비칠지 모른다는 우려에 불만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삼성이 아픔을 맛봐야 패자와 약자, 업무 관계자의 심정을 헤아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정점에서 한 계단 밀려난 삼성은 'Begin again'을 선언했다. 내년 정규시즌 6연패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새로 출발하는 삼성에는 뜨거운 과제가 주어져 있다. 새 야구장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 시대를 어떻게 여느냐는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를 주도한 삼성이 규모가 큰 전용구장에서 프로야구의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야구단은 대구의 유일한 삼성그룹 계열사다. 앞으로 어느 계열사, 어떤 임원이 야구단의 살림을 꾸리고, 어떤 감독이 선수단을 이끌든 대구시민과 함께하길 바란다. 이번에 아픔을 맛본 만큼 더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야구단을 포함한 삼성은 부정할 수 없는 대구의 큰 자랑거리이다. 올해 한국시리즈 챔피언 두산 베어스는 14년 만에 정상에 올랐지만, 삼성은 지난 4년 연속 정상에 있었다. 국내에서도 프로야구가 '문화'를 넘어 '종교'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삼성의 승패에 울고 웃는 시민들이 너무 많다. 누가 물어도 "삼성은 항상, 꼭 우승해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시리즈 입장권을 구해 달라는 부탁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일부 알려진 사실이지만, KBO가 공식적으로 삼성에 먼저 배정한 입장권에는 선수단과 스폰서뿐만 아니라 지역 기관'단체의 몫도 있다. 그러기에 이번에도 앞서 한국시리즈를 치른 지난 4년과 마찬가지로 입장권 구매를 부탁하는 사람이 많았다. 1만 명밖에 수용할 수 없는 대구시민야구장 특성상 인터넷 예매에 앞서 배정한 입장권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이 내년에는 2만9천 석을 갖춘 대구 수성구의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로 홈구장을 옮기기에 그동안 빚어진 대구시민야구장에서의 입장권 구하기 전쟁은 얘깃거리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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