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대통령의 눈빛

입력 2015-10-30 02:00:05

27일 오전 국회의사당.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목소리는 날카로워졌고, 눈빛은 싸늘해졌다. 본회의장에서 지켜본 기자들도, TV 방송을 본 이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시정연설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오늘 단비처럼 국민들을 위해 예산과 여러 현안들도 잘 풀려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는 표정이 부드럽고 밝았다.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엿보였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언급할 때부터 목소리가 높아지고, 표정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만큼 단호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겠지만, 한 여기자는 "무서웠다"고도 했다.

청와대 일부 참모와 국무위원은 박 대통령의 화난 눈빛을 '레이저 빔'이라고 한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로 민심이 크게 악화됐을 때였다. A장관을 비롯해 장관 3, 4명이 모여 '정국 해법'을 논의했다. 결론은 대통령에게 내각 총사퇴를 건의하자는 것이었다. A장관이 총대를 메고, 다른 2, 3명이 지원사격하기로 시나리오를 짰다. 다음 날 국무회의장에서 A장관은 "현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내각 총사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유의 레이저 빔을 발사하며 "내각이 모두 힘을 합쳐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자"며 만류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눈빛과 표정에 얼어붙은 다른 장관들은 당초 시나리오와 달리 아무도 지원사격을 하지 않았다. 결국 눈치(?) 없이 거듭 사퇴를 주장하던 A장관은 레이저 빔 2발을 맞은 이후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후문이다.

지난 6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쏘아붙일 때는 레이저 빔과 함께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만큼 화가 났다는 뜻일 게다.

청와대 일부 참모는 "대통령이 꾸중을 하거나 화를 낼 때 등골이 오싹해 식은땀이 날 정도"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참모나 국무위원이 대통령에게 '바른말'이나 '쓴소리'를 하겠느냐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쌍방향 소통이 어렵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레이저 빔이 적이나 도둑에게는 효율적이겠지만, 아군이나 충정 어린 참모들에게는 독이 될 소지가 높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도 절반 이상의 반대 여론을 향해 레이저 빔을 쏜다면 국론 분열만 가중시킬 것이 자명하다.

대통령이 적이나 도둑에게만 레이저 빔을 사용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광선을 견뎌 내거나 극복할 수 있는 강단 있는 참모와 장관, 정치인이 있어야만 국정이 잘못 흔들릴 때 바로잡을 여지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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