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대멸종 덕에 최상위 차지한 인류…『공생 멸종 진화』

입력 2015-10-24 01:00:08

공생 멸종 진화/ 이정모 지음/ 나무, 나무 펴냄

멸종(滅種), 대멸종(大滅種)!

별로 유쾌한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지구 역사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5번의 대멸종에 인류는 어쩌면 감사해야 한다. 바로 이 대멸종 덕분에 인류가 지구 상에서 최상위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생대가 공룡의 시대였다면 신생대는 포유류의 시대이다. 여기에서 일부 오해가 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신생대에 들어와서야 포유류가 생겨났다고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포유류는 오히려 공룡보다도 먼저 생겨났다. 다만 공룡의 등쌀(!)에 편히 살 수 없어 생쥐만 한 크기로 바짝 엎드려, 그것도 춥고 캄캄한 밤을 주 무대로 삼아 야행성 동물로 살았을 뿐이다.

만약에 6천600만 년 전 어느 날 뜬금없이 지름 10㎞의 소행성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하늘엔 익룡이 날아다니고 바다에는 어룡들이 헤엄치며 대륙은 티라노사우루스 차지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필연 같은 우연한 이 사건 덕분에 하늘과 바다와 육지에 살던 온갖 거대 파충류들이 멸종했고 그 자리를 포유류가 차지하게 됐다. 결국 우리 인류도 이렇게 태어나게 된 셈이다.

이보다 앞서 5억 년 전 바다로 가보자. 그 속에는 머리에 눈이 다섯 개나 달려 있고 입 위쪽에는 코끼리 코처럼 기다란 팔이 달렸고 그 끝에는 집게 손이 달린 오파비니아, 둥근 잎이 턱 아래 붙어 있는 길이 1~2m의 아노말로카리스, 외계 생명처럼 생긴 마렐라, 우리 내장에 사는 기생충처럼 생긴 피카이아 등이 살았다. 멸종이 됐다고 해서 그 유전자의 흐름이 완전히 끊기는 것은 아니다. 5억 년 전에 살았던 생명체들의 설계도는 대부분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남아 있다. 단 하나 오파비니아만 후대를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물이 만약 오파비니아가 아니라 피카이아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피카이아는 등뼈가 있는 모든 동물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피카이아가 그냥 사라졌다면 지금의 우리 인류는 존재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자연사는 멸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인 저자는 '공생' '멸종' '진화' 이 3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38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를 조망해 간다. 수억 년이나 바다를 지배했던 삼엽충도 사라졌고, 커다란 몸집과 신비로운 몸 설계로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멸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생명의 기본 현상이며, 대멸종은 급격히 변화한 자연환경에 맞선 생명의 혁신적 창조 과정이다. 멸종이 빈자리 몇 개 만들어서 새로운 생명을 등장시키는 기회라면, 대멸종은 생태계를 거의 텅 빈 공간으로 만들어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열어놓는 일대 사건인 셈이다.

5번의 대멸종이 지금의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었다면, 지금 진행 중인 6번째 대멸종은 대체 무슨 문제일까? 많은 동물이 싹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나타난다면 그 또한 멋진 장면일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지난 5번의 대멸종을 볼 때 최상위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바로 인류이다. 우리 인류가 사라지고 마는데 새로운 생명의 찬란한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의 핵심은 '더불어 살자'이다. 진핵생물이라면 이건 생존을 위한 기본이다. 우리 인류가 더불어 살아야 할 대상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 그리고 나아가 박테리아까지도 포함한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진핵생물은 박테리아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했다. 인류도 언젠가는 멸종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생겨난 지 겨우 20만 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인류는 훨씬 더 지속해야 정상이다. 저자는 강조한다. "(생태계의 다른 생명들과) 같이 (오래오래) 살자!" 272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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