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가 사랑한 순간들/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일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저 유명한 글로 청소년 시절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던 헤르만 헤세.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렸고, 부러워했으며, 청소년기에 그의 작품을 꼭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작가로 각인됐던 헤세.
이 책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은 헤세가 썼던 여러 작품 중에서 그의 고집스럽고, 독자적인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는 내용을 담은 글을 모아 묶은 것이다. 소설가이자 번역가로도 활동 중인 배수아 씨가 선별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같은 작품을 접했기에 우리나라 독자들은 흔히 헤세를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교양 소설을 쓰는 작가'로 생각한다. 그러나 헤세는 어떤 틀에 묶기에는 훨씬 자유롭고 풍부한 모습을 갖춘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시민사회적 규범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개성을 강조하는 것들이 많다.
헤세의 실제 삶도 그랬다. 그는 천성적으로 자연아(自然兒)였다. 청소년 시절, 자신의 개성에 눈 뜨면서 시인을 꿈꾸었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 그에게 신학교 기숙사 생활은 속박이었다. 결국 신학교에서 도망쳐 나왔고, 더 이상 도망 다닐 곳이 없다고 생각되자(세상이 온통 규범의 감옥이라고 생각되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강박증에서 다소 벗어난 뒤에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년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서점의 견습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아버지의 일을 돕기도 했고, 시계 공장에서 3년간 톱니바퀴를 닦기도 했다. 헤세는 오직 자신의 기질에 충실해, 길 없는 길을 걸었으며, 그 길 위에서 스스로 문학수업을 했다. 소설, 시, 우화, 여행기, 평론, 수상문(隨想文)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다.
이 책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은 한 가지 주제의 글을 모아 묶은 것은 아니다. 일상을 바라보는 무겁지 않은 상념, 무엇인가를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는 헤세만의 독특한 생각, 어찌 보면 소소해 보이는 일들, 가령 이웃이 자신보다 더 좋은 내용물의 편지를 받은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모습 등도 담았다.
헤세의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짧게 쓴 자서전'의 일부와 청년 시절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 여행과 무위에 대한 헤세 특유의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글들도 있다. 역자 배수아 씨가 특히 좋아하는 글이며, 헤세 문학의 정수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소설 작품의 몇 장면도 포함돼 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헤세의 방랑'에는 농가, 산길 등 자연의 아름다움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 등을, 2부 '헤세, 그리고 사랑'에는 사랑의 제물, 첫 경험 등을, 3부 '헤세가 본 사람들'에는 행상인, 처형, 어릿광대 등의 작품을, 4부 '헤세의 생각'에는 수영 선수가 될 뻔한 하루, 나무, 두 번째 고향, 부치지 못한 편지 등을 담았다. 헤세는 음악에도 관심과 조예가 깊었는데, 4부에 실린 '부치지 못한 편지'는 매우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헤세의 음악론이자 예술론이다.
'나무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강렬한 설교자였다. 나무들이 숲이나 산에서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고 서 있을 때, 나는 그들을 숭배한다. 하지만 나무들이 각자 떨어져 오직 한 그루로서 있을 때, 나는 그들을 더욱 숭배한다. 그럴 때 그들은 고독한 사람과 같다. 어떤 약점 때문에 몰래 도망쳐 온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한 단독인, 그런 고독의 인물 말이다. 나무의 높은 우듬지에는 세계가 술렁이고, 뿌리는 영원 안에서 고요하다. (중략) 나무는 신성한 존재이다. 나무와 대화할 줄 알고, 나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는 진실을 듣는다. 나무는 교훈이나 방법을 설교하지 않는다. 나무는 개별의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생명의 근원에 관련된 대원칙을 설교한다.(하략)'-나무- 중에서
351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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