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TK, 우리는 볼모인가?

입력 2015-10-22 01:00:04

내년 4'13 총선을 앞둔 대구경북(TK)의 처지가 도마 위의 생선 신세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이 온갖 시나리오를 써대고 있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또다시 TK 정치가 회자되고, 전국적인 관심사가 됐다. TK의 총선 기상도는 이번에도 흥미진진하다.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유승민 의원의 '낙마'는 마치 정설이 된 듯 지역을 맴돌고 있다. 대구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유승민 키즈(kids)' 물갈이설도 나온다. 12명의 대구 의원 가운데 친박 2명을 제외한 전원 낙마설도 있다. 여기에 더해 경북의 폐지되는 선거구의 한 의원이 대구에 입성한다는 소문도 그럴싸하게 들려온다. 설들의 잔치판이다.

TK가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TK 정치, TK 정서의 산물이다. TK 민심은 박 대통령을 앞세운 친박과 비박의 전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전략공천'이든 '우선추천지역'이든 그 핵심부가 바로 TK이기 때문이다. 자부심 강한 TK가 하루아침에 누구나 덤빌 수 있는 '만만한 TK'가 됐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이 달성군에서 내리 4선을 하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은 경북 구미다. 박정희'박근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해 열렬한 애정을 쏟은 탓에 새 지도자를 키우지 못한 TK는 '대통령의 텃밭' '깃발만 꽂으면 당선' '오로지 박근혜'의 상징이 됐다.

여당 공천권 갈등의 핵심 또한 TK 공천이다. 청와대와 친박은 TK를 흔들어 여권 지형을 새로 짜겠다는 속내를 보이고 있다. 김무성 대표로서도 TK를 친박의 뜻대로만 흘러가게 둘 수 없다. 김 대표가 TK를 승부처로 삼은 친박의 구상에 속수무책 당한다면 차기 대권 보장은 물론 정치 생명도 위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덜한 부산경남은 확실히 챙기고 TK는 적정한 선에서 청와대(친박)와 타협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대표의 이런 타협 또한 TK를 만만히 본 결과이다. 자신의 대권 가도에서 TK를 종속변수로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TK는 이미 '졸'(卒)이 돼 버렸다. TK는 모든 정치세력이 볼 때 종속변수일 뿐이다.

그러나 TK가 어떤 곳인가? 나라가 어려울 때는 분연히 일어섰고, 권력의 부당한 핍박을 받을 때는 봉기했다. 일제의 서슬이 푸를 때는 국채보상운동의 횃불을 드높이 올린 곳이 대구다. 1960년 이승만 독재'부패 정권의 불법적인 집권 연장 음모에 맞서 '2'28 학생의거'로 항거한 곳 역시 대구였다. 대구 2'28 학생의거는 3'15 마산항쟁과 4'19 혁명의 기폭제가 돼 이승만 정권을 마감시켰다.

지금과 달리 1950년대 대구는 '보수 몰표' '보수 텃밭'과는 거리가 멀었다. 1956년 자유당 이승만 후보가 70%에 달하는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을 때에도 대구의 지지도는 27%에 불과했다. 반면 이승만과 경쟁했던 무소속 조봉암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45%에 달했다. 1963년 5'16 직후 치러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의 득표율은 46.64%로 민정당 윤보선 후보의 45.09%에 근소한 우위를 보였을 뿐이다. 대구에서 보수 몰표의 역사는 1980년대부터 영호남 지역 구도와 정치권의 지역감정 이용이 고착화되면서 비롯됐다.

이는 단순한 지역감정의 발로라기보다는 야권의 대안 세력, 경쟁 세력 부재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1996년 15대 총선이 이를 잘 말해준다. 대구시민들은 대구 국회의원 13석 가운데 자민련에 8석을 몰아줬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던 김영삼정부에 대해 감연히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TK를 두고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 TK에 대한 애정 경쟁도 아니고, TK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TK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의 볼모도, 비박이나 야권의 마중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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