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의 탈을 쓴 폭압과 부정'부패에 앞장서서 항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엄청난 경찰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공권력이 정의롭지 않게 행사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나라와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고, 그 자신이 항거하다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잡혀서 고문을 당해도 좋다는 당찬 각오가 있어야만 비로소 폭정과 폭압에 분연히 항거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손들고 나서서 항거하면 적발과 체포를 피할 수 없고 본보기로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남다른 신념과 용기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선도적 항거에 대한 공권력의 대응이 매우 신속하고 단호하며 가혹한 것도 민중의 항거를 억누르는 요인이다.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폭정에 항거한 대가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가혹한 것인지 잘 알기 때문에 고매한 희생정신과 특출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감히 공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힘들다. 폭정에 최초로 항거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뒤따를 것이라고 확신하더라도 희생타를 자처하고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최초로 항거한 사람과 사건을 높이 사는 것이다. 대구 2'28민주운동이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60년 2월 28일, 당시 아무도 먼저 나서지 못했고, 기성세대들도 침묵했던 부정'부패와 폭정에 대하여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항거했다. 공포에 숨죽이고 있던 대구 시민과 국민들에게 대구의 학생들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부정'부패 정권에 숨죽였던 언론도 대구의 2'28민주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고 전국의 학생들이 잇따라 궐기하고 나섰다. 그해 3월 8일은 대전, 3월 10일은 수원과 충주, 3월 12일은 부산과 청주, 3월 15일은 마산 등으로 민주화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되었다. 4월 19일, 대학교수들을 앞장세운 대규모 시위대가 서울 종로를 점거하였고, 4월 21일 내각이 총사퇴하였으며, 4월 26일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2'28은 마침내 그 결실을 맺었다. 즉, 4'19혁명은 1960년 2월 28일에서 동년 4월 26일까지 진행된 일련의 민주화 과정이다.
4'19혁명이 성공한 민주혁명이라면 그 공의 절반은 대구의 2'28에 있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시작이 반이고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4'19혁명도 그 이름이 제대로 명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 1960년 2월 28일부터 동년 4월 26일까지의 일련의 혁명 진행 과정을 묶어 이른바 '학생혁명 또는 경자혁명' 등으로 개칭하여야 마땅하다. 혁명 기념일도 가장 중요한 시발점인 2월 28일로 변경해야 하며 혁명 기념행사도 2월 28일부터 4월 26일까지 해당 지역에서 각각 엄수해야 한다. 그것이 숭고한 혁명 정신을 기리고 그 뜻을 이어갈 후세의 책무인 것이다. 대구의 2'28은 대구 시민정신의 표출이고, 동학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민주화혁명이며, 국가 정통성을 공고히 세운 선구적 쾌거다. 대구의 2'28은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서 싸운 국채보상운동과 함께 대구시민과 전 국민이 높이 선양해야 할 자랑스러운 정신문화유산인 것이다.
2'28과 4'19는 다르지 않다. 4'19혁명의 무게중심은 대구의 2'28에 있어야 한다. 두류공원으로 이전한 대구2'28민주의거기념탑과 별개로 대구2'28기념중앙공원 내에 탑이나 동상, 부조 등 기념 조형물을 대대적으로 새로이 정비해야 마땅하다. 최고의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대구 2'28 관련 호칭도 통일시켜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위대한 혁명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위대한 혁명에 걸맞은 국가적 관심과 국민의 애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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