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상엿집과 조원경

입력 2015-10-21 01:00:09

상엿집(喪輿집)은 동네에서 상이 났을 때 사용하도록 상여 등 여러 장례 용구를 보관하던 곳이다. 대개 곳집이라고 불렀다. 웬만한 규모의 농촌에는 마을 후미진 곳에 상엿집이 있었다. '죽음'과 관련한 곳이어서 근처에 가거나 입에 올리는 것도 금기시했지만, 마을로서는 꼭 필요한 공동시설이기도 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이들이면 한 번쯤은 '비 오는 날 밤 상엿집 갔다 오기' 같은 담력 시험 놀이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산업화에 따라 필요성이 없어지고 흉물이 되면서 상엿집은 거의 사라졌다. 현황도 파악되지 않는다. 문화재청은 얼마나 있었는지, 현재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경산시 하양읍 무학산의 상엿집 한 곳뿐이고, 시도 문화재로 지정된 곳도 안동시 일직면의 상엿집 한 곳이다. 그나마 상여는 3개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서울'춘천에 보존돼 있고, 상여를 메고 나갈 때 불렀던 상엿소리는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시도 문화재로 지정했다.

하양 무학산 상엿집은 감리교 목사이자 (사)나라얼연구소 이사장인 조원경 씨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원래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서 철거 직전까지 갔었는데 조 씨와 인연이 닿았고, 2010년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조 씨에 따르면 "철거 예정일 사흘을 앞두고 정말 우연히 알게 돼 샀고, 트레일러를 동원해 무학산으로 옮겼다"고 했다. 이 상엿집은 1891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적힌 상량문과 여러 문서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우리나라 상여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됐다.

오는 30, 31일 이틀 동안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관과 상엿집 현장에서 전통 상례 문화와 관련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상여 문화의 전승과 세계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는 살풀이춤으로 유명한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의 공연과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의 상엿소리 시연회도 곁들인다. 120년 전통의 설화리 상엿소리는 2012년 달성문화재단이 발굴 지원해 한국민속예술축제 대구 대표로 나가 지난해 장려상, 올해 은상을 받았다.

상엿집은 한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져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존중받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죽음'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상엿집만큼 빨리 사라진 것은 예를 찾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상엿집을 지키려고 노력한 이 덕분에 잊힌 우리 문화를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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