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상 이어 유료투표 논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해마다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비난을 받고 있는 영화 시상식 대종상이 올해도 여지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제52회 행사를 알리는 공식기자회견 자리에서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는 후보에겐 상을 주지 않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가 '개근상 시상식'이라는 비아냥 섞인 놀림에 시달리고 있다. 또 인기상 선정 과정에서 문자투표를 실시하는 다른 프로그램이나 시상식에 비해 높은 금액의 정보이용료를 책정해 '과하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
11월 중순에 열리는 본 행사를 약 한 달 정도 앞둔 시기. 출발선에서 스스로 논란을 부추기는 조직위 관계자들의 태도는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그저 의아할 뿐이다. 대종상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고 있는 시상식이며 한국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행사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20여 년에 걸쳐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유물' 이상의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종상 측이 자초한 논란, '집안 문제' 들춰낸 꼴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개근상' 논란 역시 대종상 측이 자초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올해 52회 대종상영화제 사업본부장 자리를 맡고 있는 조근우가 뜬금없이 "각 부문별로 수상자를 두 명씩 선정하고, 참석하지 않는 이에게는 상을 주지 않겠다"고 말한 게 도화선이 됐다. 이어서 "국민이 함께하는 영화제에서 대리 수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또 한 차례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논란을 부추겼다. 지난 2011년 공개적으로 발표한 수상 후보 명단에서 해외 체류 관계로 불참하겠다고 통보한 심은경을 제외하는 등 무리한 진행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대종상이, 아예 '우린 원래 이렇다'고 공식입장을 밝힌 셈이다.
시상식을 하나의 '쇼'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참석하는 후보 위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심사 과정에서 결정된 수상자가 불참을 통보할 경우, 특히 차점자와 득표율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면 굳이 기를 쓰며 불참하는 이에게 상을 돌릴 이유도 없다. 물론 심사위원 사이에서 '꼭 이 후보에게 상을 줘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거나 애초 수상자로 지목된 이가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면 대리 수상이라고 하더라도 감수해야만 한다. 일단,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어떻게든 부문별 후보들의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정석이다.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쇼', 그리고 '공정한 시상식'이란 칭찬을 동시에 끌어내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며 굳이 이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외부에 알릴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대종상 측은 일종의 '대외비'를 굳이 공식석상에서 떠들어대며 자진해서 벼랑 끝으로 걸어갔다.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밝힌 후 이어진 발언이라 현장에 있던 취재진들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히려 '대종상은 원래 이런 시상식'이라며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그동안 제기됐던 심사 과정의 문제점을 인정한 셈이다.
자연스레 이 사건 이후 '부문별로 선정된 두 명의 수상자가 모두 불참할 경우는 어떻게 할 거냐' '유력 후보가 불참한 상태에서 상을 받은 이가 과연 스스로 자랑스럽게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등의 의문이 이어졌다. 대종상 측이 상황을 무마하려 애쓰고 있지만 이미 스스로 불을 질러놓은 상태라 회복은 불가능해 보인다. 시상식 당일에 부문별 후보를 전원 자리에 앉혀 두지 못한다면 여지없이 '차점자 대타 수상 논란'이 터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기상 유료투표제 도입에 대한 부정적 여론까지 생기면서 대종상 측의 입장은 더 난감해졌다.
흔히 타 시상식의 경우에도 팬들의 투표로 인기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일이 많다. 이 과정에서 여러 방식의 투표를 진행하고 문자투표 등으로 대체할 경우 유료화하는 일도 잦다. 통상적으로 이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대종상은 인기투표 참여자를 대상으로 모바일 앱 회원 가입을 유도하고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시상식에 비해 높은 금액을 책정하는 등 '상술'이 유난히 눈에 띄어 빈축을 사게 됐다. 대종상 측에서도 '형편없이 줄어든 운영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철저히 행사를 위해 사용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수차례 운영진의 횡령 등 비리가 널리 알려진 터라 보는 시선이 고울 수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시상식, 이대로는 안 돼
벌써 7, 8년 전의 이야기인데, 대종상 측이 자신들의 간담회 과정을 매체 취재진 앞에 공개한 적이 있다. 이때 필자 역시 취재 목적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 전부터 간간이 원로 영화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심각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고 영화 관계자들의 회의 자리에서 수차례 그들의 밥그릇 싸움을 목격한 터였다. 그런데도 당시 대종상 측이 매체 관계자들까지 불러 보여준 간담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시상식 발전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당시 이 행사를 이끌고 있던 한국영화인협회 등을 중심으로 '회원 등록을 하지 않은 영화사나 개인에 대해서는 상을 줘선 안 된다' 등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주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사실상 현장에서 은퇴한 영화계 원로들이었고 취재기자들이 듣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대종상이라는 역사적인 시상식을 자신들의 사적인 권력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자리에서 집행위를 이끌고 있던 핵심 멤버들은 몇 년 후 횡령사건 등으로 처벌받았다.
1996년 미개봉 영화 '애니깽'에 작품상을 줬던 어이없는 사건(예심 진행 당시 화면 안에 음향 스태프의 붐 마이크가 그대로 드러나는 등 완성도에 문제가 있었던 영화에 상을 줘 대종상이 존폐 위기에 처했던 일)이나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에만 총 15개의 상을 몰아주는 '희대의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는 대종상 내부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1년 '하루'에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등 주요 3개 부문의 상을 주면서 당시 최고 히트작이었던 '친구'를 외면해 심사 기준의 불투명성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09년에는 '해운대'와 '내 사랑 내 곁에'로 호평받은 하지원을 제외하고 미개봉작이었던 '하늘과 바다'의 장나라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공정성과 후보작 선정 기준에 문제가 많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영화인들이 한동안 대종상을 보이콧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대종상 내부가 낡고 삐걱거리는 부품들로 구성돼 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번 52회 행사 관련 기자회견장에서 주최 측이 '불참하면 상도 안 준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대종상을 자신들의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후배 놈들이 선배 대우를 안 해준다'고 매번 소리나 지르는 '존경받지 못하는 선배'들이 대종상의 힘을 빌려 행세 한번 해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스폰서가 필요해 기업을 끌어들였는데 그 기업의 수장이 문제가 생겨 구속되고, 믿을 만한 영화인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히 해결할 자신이 없다"며 도망치고 만다. 총체적 난관이다.
심지어 주최 측은 이번 시상식에 역대 수상자들까지 모두 불러 모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번 발언으로 영화계 내에서, 심지어 이번 시상식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영화계 8개 단체 관계자들까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역대 수상자를 대거 초대하는 일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 중국에도 인터넷 생중계를 하고 중화권 유명 배우를 섭외해 해외 부문 시상까지 진행한다는 게 이번 52회 대종상 측의 야심 찬 포부다. 해외로 알려지게 된 대종상을 보며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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